사실 혼란스러웠다. 한창 상승 곡선을 그리던 시기에 페이즈 1을 마무리했던 때처럼, 페이즈 2의 완결 역시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랐던 것은 별다른 휴지기 없이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다는 점. 다만 재차 새 출발을 선언한 미세스 그린 애플이 어떤 변화를 도모하는지까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계 없는 음악 집단으로 진화하고자 한 전작 ‘ANTENNA’의 음악적 경향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lulu.’는, 페이즈 3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큰 힌트가 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9개월이 흐른 뒤 완성된 신작 ‘POPS’는 그 의문을 완벽히 해소한다. 결과물이 담고 있는 소리와 메시지 모두,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광활한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덕분이다.
페이즈 2에서 이들이 주력한 것은, ‘엔터테인먼트’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것이었다.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고 앨범과 라이브만으로 팬 베이스를 구축해 장기간 활동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다양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가 하면, 프런트퍼슨인 오모리 모토키는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싱글 발매 간격을 최소화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팀의 음악을 듣고 행보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을 거쳐 전에 없던 거대한 지지 세력이 형성된 지금, 이들은 때가 되었다는 듯 태세를 전환한다.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풍경, 수많은 대중을 마주하는 각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제까지 쌓아올린 음악적 자산에 얹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총력전인 셈이다.

앨범 ‘POPS’를 채운 트랙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팝’이라는 단어의 의미, 즉 대중성이나 상업성, 보편성과 같은 성질로 곧장 향하지 않는다. 수많은 악기에 기반한 상당한 정보량과 단번에 와닿지 않는 난해한 구성, 여러 장르의 실험적인 융합 등 면면을 보면 오히려 기존의 개념에 반기를 드는 듯하다. 팀은 CM을 통해서도 “모두가 들으니까 좋아하는 것인가?”, “히트 차트가 곧 정의인가?”, “어두운 곡은 인기를 얻지 못하는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여러 잡지에 각기 다른 곡에 대한 해설을 실어, 사람들이 음악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상 ‘정점’에 선 지금, ‘팝’이라는 포맷의 특성과 기능, 그 전달 방식을 치밀한 설계에 기대 재정의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운드적인 측면을 보자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스타일을 고르게 담아냈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특히 밴드 사운드의 귀환은 많은 이들이 반길 만한 대목이다. ‘共犯’은 커리어 초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베이식한 악기 편성으로 ‘결국 우리는 같은 세계 속 서로의 감정을 함께 형성해 가는 공범’이라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전 ‘ENSEMBLE’ 투어에서 단 한 번만 선보였던 ‘Really Really’의 정식 음원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연주 집단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함과 동시에 독특하게 가공된 보컬로 보카로와 같은 뉘앙스를 가미하며 후반부로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역시 건재하다. 변칙적인 박자와 불규칙한 구성으로 이색적인 스펙터클함을 구현하는 ‘ア・ポステリオリ’, 숨을 고르는 발라드에 전자음악의 텍스처를 과감히 덧입혀 평범히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本と彗星’, 컨트리의 어법을 끌어들여 루츠 뮤직과의 동행을 시도하는 ‘風と町’ 등에 페이즈 2를 통해 구축한 음악적 노하우가 전면에 서려 있다. 키보드를 중심으로 재즈 특유의 즉흥적 뉘앙스를 살린 ‘禁じた遊び’ 또한 흥미롭다. 무기력과 여유 사이에서 유영하는 듯한 음상을 제시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팀임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이 작품에서 새롭게 마주하는 에고도 존재한다. 소리 측면에서 스트레이트하게 다가오는 곡은 역시 ‘プロジェクト 4’다. 보컬에 오토튠을 사용하며 온기를 배제하고, 가사의 대부분을 영어로 써 내려가며 기존에 고정되어 있는 자신들의 이미지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가 하면 ‘Brand New’는 새롭게 갱신된 자신들의 각오를 숨김 없이 드러낸 가사에 주목할 만하다. 이전보다 더욱 ‘모두를 위한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은 3년 만의 정규작이자 페이즈 3의 포문을 여는 선언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エピソード’는 속도감 있는 비트를 덧대고 현악 세션까지 더해 하이브리드 뮤직의 극단에 위치한 자신들의 위용을 내비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16개의 장면을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그룹의 연대기가 완성된다는 점이, 이들의 신보가 지닌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일 것이다.
꽤나 밀도가 높음에도 이 결과물은 결코 듣는 이를 밀어내지 않는다. 러닝타임을 몇 번만 반복해도 모든 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진입 장벽은 낮고, 들으면 들을수록 그 안에 숨은 디테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어렵게 만들어 쉽게 들리게 하는 것, 이 역량이야말로 난해함과 대중성을 동시에 붙드는 이들만의 무기다. 그렇게 끝내 듣는 이를 설득해내고야 마는 이 작품에는 ‘대중’이 아닌 ‘개개인’으로서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삶’이라는 것은, 순탄할 리 없으며 때로는 아픔만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ア・ポステリオリ’가 그렇다. 경험이 쌓일수록 인간은 성장하고 더 나아질 것이라 믿지만, 실상은 상처받고 속은 썩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아픔이 있기에 비로소 자라나는 것도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남을 탓하기도 하고, 평생 좇아온 것을 성취함과 동시에 허탈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앨범은 그 모든 것이 유의미하다고 이야기한다. 무미건조하고 어려워만 보이는 삶에도 각기 다른 의미가 있음을, 우리 모두가 저마다 다른 색으로 자신의, 서로의 세계를 채워 나가고 있음을 일깨운다.
‘本と彗星’ 속 노랫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비록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일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세상에 남는다. 그것은 일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을 변화시키고 끝내 세계선을 움직일 만한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의 삶 중 그 무엇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나아가게끔 하는 것. 그들이 이전에 ‘僕のこと’를 통해 언급했듯, 일견 평범해 보이는 ‘궤적(軌跡/kiseki)’을 각자만의 가치 있는 ‘기적(奇跡/kiseki)’으로 만들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팝’의 기능적 측면이자 재정의해야 할 역할이지 않았을까.
갈수록 양극화되고 파편화되는 세상 속, 그래도 아직 음악이라는 것은 연대를 촉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재인식할 수 있음을 독자적 방식으로 구현한 일종의 성명서다. 더불어 본인들이 세계의 기준을 새로 써 내려가겠다는 기개와 열정은 경이롭다는 인상마저 준다. 좋은 음악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한, 치밀하면서도 장벽이 없는 이 한 편의 소리 논문 앞에서 ‘올해 최대의 화제작’이라는 수식은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이들이 특정 세대를 타깃팅하는 사이, 시대를 역행해 상이한 취향을 지닌 모두를 포섭하겠다는 포부로 성취해낸 업적. 이제서야 비로소 절감한다. 우리는 ‘미세스 그린 애플’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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