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에서 퓨전이란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퓨전 푸드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나라다. 일본의 스시에 아보카도를 올리거나,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는 곳이 그 나라다(이탈리아인, 특히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악몽(?)이겠지만). 퓨전은 본래의 성질을 비틀거나 더하거나 바꾸어버린다. 요즘 유행하는 융합, 통섭과 연결된다. 그렇게 다른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원래 변종, 잡종, 이종교배는 더 우수한 형질의 세대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사실상 야생종을 끊임없이 교배한 결과 나온 것이며, 지금도 우수한 유전공학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소와 돼지는? 시금치와 양파는? 사과는 또 어떤가. 음식의 역사는 유전적으로 교배의 역사이며, 이는 곧 인류에게 더 많은 칼로리와 맛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 고려된 일이다. 이런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교배와 ‘뒤섞음’, ‘비틀기’ 말고도 프라이팬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틀기도 여전히 활발하다.
한국 음식을 예로 들어서 안 됐지만, 김치는 이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일본 등 유력한 지역에서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비틀어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고급 식당에서 전채 요리의 샐러드나 스테이크 요리의 가니시로 김치가 나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상상해봤는지. 이는 이미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아주 전형적인 방식으로 무친 샐러드와 유러피언 방식의 스테이크 요리에! 미국에서는 타코와 부리토 같은 요리에 김치나 불고기가 들어가서 ‘다중 퓨전’을 완성했다. 타코에 한식을 섞는 것은 한국, 멕시코의 퓨전이며 부리토에 넣는다면 이것은 미국 텍사스인들이 만들어낸 멕시코 퓨전에 한식을 추가한 것이므로 한, 미, 멕시코의 3중 퓨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부리토에 아프리카식 양념을 추가한다면 더 흥미로운 퓨전이 될 듯하다. 누군가 먼저 투자해보시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그런데 이미 한국에는 퓨전이 일상이다. 한국인은 원래 잘 섞는 사람이다. 심지어 ‘섞어찌개’라는 음식도 있다. 학교에 가면 케첩소스의 스파게티를 ‘반찬’으로 내고, 햄버거 패티를 곁들여준다. 물론 밥과 김치가 나오는 식단에 말이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자연스레 이 음식을 먹는다. 집에 가서 이 메뉴가 나왔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맛있게 먹는다면 ‘섞이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나폴리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한국의 피자이올로(pizzaiolo, 피자 기술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들은 파인애플이 아니라 맛이 있다면 두리안이라도 올릴 용의가 있다. 불고기는 기본이고, 네덜란드 고다 치즈도 오케이며, 볶은 김치와(엄청 맛있다) 짜장소스를 바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짜장은 이미 한 번 비틀어진 소스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파스타도 마찬가지여서 고추장이나 멸치소스, 김치와 명란을 넣는 것은 아무 거리에서나 먹을 수 있다. 이미 외국에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간장게장을 넣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맛의 결과에 대해 집착할 뿐이다. 이탈리아 정통 파스타는 아니지 않은가 하고 누가 의심스럽게 물으면 발랄한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뭐 어때서? 맛있는 게 중요하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은 전통 식단이라고 부르는 음식에도 마요네즈 샐러드를 내곤 한다. 건너온 지 오래된 것은 다 포용하는 한국식 태도가 적용되는 것이다. 부대찌개의 예를 들어보셨는지. 사실, 이 요리는 부대가 상징하는 ‘미군 부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이 먹는 햄과 소시지, 캔에 든 콩과 미국식 치즈 같은 재료를 넣은 ‘김치찌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늘과 파를 듬뿍 넣어서 누가 먹어도 한국의 플레이버를 느끼게 해준다. 말하자면, 한국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전통 요리의 핵심인 김치에조차 한국인은 가장 산업적인 미국 재료를 넣어 즐긴다. 그런다고 김치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김치는 김치대로 따로 즐기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그건 자신감인 것 같다. 아침에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출근해서는 김치찌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게 한국인의 일상이다. 거리에서는 매일 새로운 스타일의 퓨전 음식점이 나와서 기존의 강자들과 한판 붙겠다고 벼르며, 사람들은 열심히 그런 식당에 가서 돈을 기꺼이 쓴다. 리뷰를 달아서 각성시켜주거나 칭찬해준다. 퓨전하는 셰프들에게 ‘더 세게, 더 창의적인 걸로’ 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의 셰프들이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것은 이런 풍토 때문이다. 끊임없이 ‘경우의 수’ 같은 순열 조합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마치 빅히트 향수 대박을 노리는 조향사처럼 섞어보는 것이다. 실패는 당연한 일이고, 그 ‘무덤’ 위에서 새로운 요리가 기어이 태어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 달만 있으면 그새 변하는 식당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요리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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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EONGJANG F&B
TRIVIA
부대찌개
부대찌개는 이미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요리다. 미군 부대가 있던 지역별로 부대찌개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공군 부대가 있는 오산 송탄식, 육군은 주둔 부대별로 파주식과 의정부식으로 나뉜다. 8군 본부가 있던 용산식도 물론 조금 다르다. 어떤 것이든 얼큰한 맛이 기본이다. 이는, 마치 일본의 미군 주둔 지역인 오키나와, 사세보, 요코하마, 요코스카의 햄버거 스타일이 다른 것과 흡사하다. 재밌는 건 일본은 그 대상이 미국식 음식인 버거인 데 비해, 한국은 어디까지나 한국 주도의 찌개라는 사실이다. 부대찌개에 대해서 이설도 있는데, 한국군이 파병되었던 베트남 전쟁 시기에 생겼다는 설이다. 미군의 고기, 햄과 소시지 부식이 한국군에 전달되었는데, 느끼한 음식에 물려서 한국에서 수송해온 김치 통조림, 마늘 등을 섞어 끓여 먹으면서 탄생했다는 얘기다. 참전 군인 한국의 문호 황석영 선생의 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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