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쇼츠를 선한 쇼츠로 덮는 기적을 보여드리자.”
지난 12월 5일, 나영석 PD가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에서 진행한 ‘[라이브] 나영석 배정남 해명 방송’ 중 했던 발언이다. 그가 배정남을 ‘손절(주식 거래 등에서 사용하던 단어이나 최근에는 인간관계를 끊는다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했다고 주장한 유튜브 쇼츠를 배정남과 함께 반박하는 자리였다. 두 사람은 1시간 이상 ‘[라이브] 나영석 배정남 해명 방송’을 진행한 뒤 ‘해명합니다’라는 쇼츠를 제작해 ‘채널십오야’에 올렸다. ‘해명합니다’는 50초 이내의 분량에 루머를 반박할 핵심적인 근거를 담았다. 이 영상들은 정말로 루머를 “덮는” 중이다. 라이브 방송 후 ‘나영석 배정남 손절’을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맨 위에 ‘[라이브] 나영석 배정남 해명 방송’이 뜬다. 쇼츠 항목에는 이 라이브 방송의 내용을 요약한 여러 영상들도 볼 수 있다. 루머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라이브 방송 당시 문제의 쇼츠 조회 수는 800만 뷰 이상이었다. 해명 후에도 ‘나영석 배정남 손절’ 검색에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쇼츠들이 따라 나온다. 대신 해명 영상을 목록의 맨 위에 올리고, 이 영상 근거로 루머에 반박 댓글이 달리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손절’ 쇼츠를 본 사람에게 ‘해명합니다’ 쇼츠도 뜨게 할 수는 있다.
나영석 PD는 지난 5월 12일 유튜버 침착맨의 라이브 방송 ‘PD 나영석 초대석’에 출연했다. 그가 침착맨에게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대해 배웠다며 ‘채널십오야’에서 첫 라이브 방송 ‘침착맨에게 배워왔습니다 시리즈 1탄 : 라이브는 길게’를 시작한 것이 5월 26일이었다. 5월 26일 이전의 ‘채널십오야’에는 기존 버라이어티 예능처럼 스타 게스트가 퀴즈를 맞추는 ‘출장 십오야’가 가장 인기를 얻었다.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EP.3-1ㅣ장담컨대 이 랜덤플레이댄스를 보면, 입덕 시작’은 현재 4,600만 뷰 이상(12월 17일 기준)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다만 지금처럼 ‘채널십오야’를 통해 배정남과의 루머를 해명할 방법은 없었다. 불과 6개월여 만에, 나영석 PD는 자신에 대한 논란을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쇼츠를 연결해 반박하는 유튜버가 되었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침착맨에게 배워왔습니다 시리즈 1탄 : 라이브는 길게’의 내용 대부분은 그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만든 김대주 작가의 방송 경력에 대해 듣는 것이었다. KBS ‘1박 2일’부터 올해 tvN ‘뿅뿅 지구오락실’까지, 레거시 미디어인 지상파와 케이블 TV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PD가 유튜버로 나서는 첫 라이브 방송으로는 소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김대주 작가는 이후 라이브 방송의 공동 MC 같은 역할을 했고, 나무위키의 ‘나영석’ 항목을 읽고 게임 방송을 하는 등 유튜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주제를 나영석 PD와 함께 소화한다. 김대주 작가에서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비하인드는 자신이 속한 콘텐츠 회사 에그이즈커밍의 직원들은 물론 ‘사이렌: 불의 섬’과 ‘데블스 플랜’ 등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을 초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과 잘 아는 사람과 소규모로 시작한 콘텐츠가 점점 더 다양한 소재와 많은 사람들을 다루면서 규모와 출연진이 확장된다. ‘침착맨에게 배워왔습니다’라는 문장 그대로 나영석 PD는 유튜버의 방식을 ‘채널십오야’에 적용했다.
나영석 PD와 배우 이서진이 함께 미국 뉴욕을 여행하는 과정을 담은 ‘이서진의 뉴욕뉴욕 2’는 ‘EP.1 | 4년 만에 더 다운그레이드(?) 되어 돌아왔습니다’로 시작한다. ‘다운그레이드’라는 표현은 첫 시즌을 방송한 4년 전과 비교해 촬영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이서진이 “더 다운그레이드 됐네.”라고 답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서진의 뉴욕뉴욕 2’는 최소한의 스태프만이 참여해 관광객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카메라로 촬영한다. ‘EP.1 | 4년 만에 더 다운그레이드(?) 되어 돌아왔습니다’에서 촬영 중인 스태프를 두고 “프로 유튜바 느낌” 같은 자막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에그이즈커밍이 이사를 하면서 건물 옥상에 올라갈 수 있게 되자 나영석 PD는 옥상에 정우성과 황정민을 데리고 고기를 구워 먹는 ‘나영석의 지글지글’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이서진을 조명도 제대로 없는 에그이즈커밍의 사무실 벽을 배경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나영석의 나불나불’을 시작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제작 여건을 이 정도로 ‘다운그레이드’시킨 콘텐츠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또한 ‘나영석의 나불나불’이 ‘나영석의 지글지글’이 되는 것은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바꾸는 개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튜버 나영석에게는 이사한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나영석의 지글지글’, 세븐틴처럼 여러 명의 게스트와 넓은 장소에서 회식을 하며 대화를 하면 ‘나영석의 와글와글’이 된다. 나영석 PD는 유튜브에서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 제작 방식과 절차를 극도로 줄이거나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온다. 인공적인 세트나 조명 없이 고기를 구워 먹자 황정민은 편한 자세로 앉아 영화 ‘장군의 아들’에 출연한 데뷔 시절 이야기부터 공연을 자주 보는 취미,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를 본 소감을 말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두서 없이 연결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삶과 영화가 얼마나 깊은 연관을 갖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 소재가 바뀌는 사이에 그가 평소 어떤 톤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화하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
나영석 PD에게 지금의 ‘채널십오야’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KBS ‘1박 2일’을 할 때부터 그는 세트가 아닌 현실을 배경으로 촬영했고, 때론 지금의 여행 유튜버들처럼 출연자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혼자 촬영을 진행하게 만들었다. 라이브 방송에서 제작 스태프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1박 2일’에서 종종 스태프들까지 에피소드의 일부로 삼았던 것과 겹친다. 나영석 PD는 ‘1박 2일’에서 함께한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과 tvN ‘신서유기’를 만들고, ‘1박 2일’의 게스트로 처음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이서진과 tvN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tvN ‘서진이네’에 이르기까지 그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만 활동할 때도, 나영석 PD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맥락을 만들었다. 다만 레거시 미디어에서 맥락은 프로그램 안에 파편적으로 담겨 있었다. 반면 유튜브에서는 맥락이 모든 콘텐츠를 하나로 묶는다. 세븐틴이 ‘나영석의 와글와글’에 출연한 것은 ‘출장 십오야 2’와 내년 1월 5일 방영 예정인 ‘나나투어 with 세븐틴’을 통해 나영석 PD와 친해졌기 때문이다. ‘나나투어 with 세븐틴’을 볼 수 없는 시청자에게 ‘나영석의 와글와글’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친밀한 분위기는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영석의 와글와글’ 촬영 직후 라이브 방송을 켜서 서로 이미 가까워진 관계임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출장십오야 2’와 ‘나나투어 with 세븐틴’ 사이의 맥락을 채운다면, 라이브 방송은 다시 ‘나나투어 with 세븐틴’과 ‘나영석의 와글와글’의 맥락을 채우면서 이 모든 콘텐츠를 세븐틴과 나영석 PD의 관계로 연결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연결에서 나오는 맥락이 스토리가 되어 마치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콘텐츠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나영석 PD가 유튜버와 유튜브에게 배운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에 가까워 보인다. 그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추구하던 무언가가 유튜브에 와서 가장 빈틈없이, 높은 완성도로 구현되고 있다.
이서진이 ‘나영석의 나불나불’에서 말한 에피소드는 ‘이서진의 뉴욕뉴욕 2’로 연결된다. 나영석 PD가 에그이즈커밍의 직원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로 회사 체육대회를 여는 과정을 담은 ‘소통의 신’은 그가 에그이즈커밍 직원들의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나영석의 부릉부릉’, 에그이즈커밍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양 강좌를 하는 ‘에그문화센터’로 이어진다. 콘텐츠의 시작점은 형식이 아닌 나영석 PD와의 관계고, 출연자 간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여러 장르를 오가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채널십오야’라는 단일 채널에서 구현되면서, ‘채널십오야’는 세계적인 슈퍼스타부터 에그이즈커밍의 신입 직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 문자 그대로 세계가 되었다. 두 번의 시즌을 거치면서 가까워진 ‘뿅뿅 지구오락실’ 출연자들과 나영석 PD의 관계는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되는 ‘뿅뿅 지구오락실 2’의 리뷰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뿅뿅 지구오락실’의 연출자인 박현용 PD가 출연하면서 그 또한 이 관계에 포함돼 있음을 알렸고, ‘[라이브] 지락실 메인 잔디인형 박현용 PD와 함께합니다’에서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그만의 캐릭터와 연출자로서의 인생사를 들려주었다. 스타는 자신의 매우 사적인 언행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담는 스태프는 방송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그렇게 관계가 맥락을, 맥락이 이야기를, 이야기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사이 ‘채널십오야’는 라이브 방송과 토크쇼, 여행과 회사 배경의 관찰 예능, 교양 강좌가 모두 있는 미디어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2023년 12월의 ‘채널십오야’는 유튜브 시대의 tvN이다.
나영석 PD가 그의 바람대로 에그이즈커밍의 직원들과 소통을 잘하는 ‘소통의 神’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나영석의 부릉부릉’에서 직원들은 나영석 PD를 보자마자 당황한다. ‘뿅뿅 지구오락실’의 재미 중 하나는 나영석 PD가 ‘MZ세대’인 출연자들을 이해하지도 통솔하지도 못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가 올해 ‘소통의 神’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은 사실이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의 소통은 번번이 어색하게 끝나지만, 에그이즈커밍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할 방법은 찾았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이미 모든 것을 이뤘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 유튜버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채널 안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크리에이터로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에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과 변화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각자의 뇌 속에 있는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시시각각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고 대응하면서 각자 생각하는 방식을 더 이상에 가깝게 구현할 수는 있다. 물론 모두가 나영석 PD 같은 비전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연출자로서의 창작력과 미디어 기획자로서의 비전을 유튜버의 본능적인 행동력으로 통합하다니, 한국 예능 콘텐츠 역사에 ‘만렙’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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