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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가비 걸 GABEE GIRL 유튜브

‘디바마을 퀸가비’ (‘가비 걸 GABEE GIRL’ 유튜브)
윤해인: 매 순간 파파라치가 따라붙고, 572명의 매니저가 있는 미국의 셀러브리티 ‘퀸가비’가 한국을 방문하며 벌어지는 일상. 댄서 가비의 유튜브 채널로 공개된 ‘디바마을 퀸가비’는 설정부터 2000년대 미국의 셀러브리티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티 쇼를 연상시킨다. 장면 전환마다 등장하는 드론 샷,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출연자의 사생활, 소위 ‘기싸움’이라 일축되며 인물 간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뒷담화’ 콘셉트의 인터뷰, 촬영 중인 PD와의 대화를 그대로 담으며 리얼함을 더하는 방식까지. 시청자들이 댓글 창에서 과거의 케이블 채널을 떠올리는 것처럼, ‘디바마을 퀸가비’는 잠시 잊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정서를 재현하는 중이다. 

물론, ‘디바마을 퀸가비’의 예능적 재미는 이 충실한 재현 이상에 있다. 셀러브리티를 표방하는 퀸가비의 ‘핫’한 의상과 ‘신촌 웨딩 거리’, ‘결정사(결혼 정보 회사) 사무실’, ‘일산 라페스타’ 같이 지독히 한국적인 풍경이 이질적으로 섞이는 장면은 속절없는 웃음을 낳는다. 여기다 세상 무기력하고 소심한 어투로 할 말은 다 하는 PD, 깨알같이 팩트를 날리는 자막, 시도 때도 없이 긴장감을 주는 ‘심각한 음악’ 효과는 나오기만 하면 조건반사 웃음을 터지게 하는 ‘퀸가비 세계관’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모든 재미의 중심에는 문장마다 ‘like’를 남발하고 화려한 스타일링을 소화해내며, ‘내리 잡도리’ 눈빛과 제스처의 디테일을 구현한 예능인으로서 가비라는 인물이 빛나고 있다. 아직도 이 모든 조합이 이해가 안 간다면 일단 방송인 이은지와 함께한 ‘상위 포식자의 등장🥀’부터 보길 추천한다. 대체 어디가 애드리브이고 대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가비와 이은지의 미친 ‘티키타카’부터 콘셉트에 대한 이해력, 예상보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두루 갖춘 에피소드다.

‘데드풀과 울버린’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Fuck you, Fox! I’m going to Disneyland!” 폭스를 인수한 디즈니의 최우선 과제는 엑스맨 유니버스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이식할 당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정공법이 가장 용이할 때가 있고 그리하여 마블 최초 R등급 딱지 ‘데드풀과 울버린’이 탄생했다. 구 히어로, 현 중고차 딜러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은 어느 날 TVA(시간 변동 관리국)에 끌려가 그의 우주가 곧 사라질 위기이며 이유는 그의 우주의 키 맨, 울버린(휴 잭맨)의 죽음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이 설정이 울버린과 데드풀의 오작교이자 ‘로건(2017)’에서 사망한 울버린과는 다른 버전의 울버린을 소환하기 위해 멀티버스를 활용할 명분이다. 마블은 유니버스 융합의 통과의례로써 제4의 벽을 숨 쉬듯 넘나드는 한결같이 상스러운 데드풀이 “멀티버스 하기만 하면 실패”한다고 일갈하는 그림, 자아비판 내지 자기 객관화하는 모양의 쿠션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파묘에서 유혈로 이어지는 시원한 오프닝과 블록버스터다운 액션 신, 내내 엑스맨 유니버스를 존중하는 영화의 기조는 팬들의 기대를 이리저리 충족시킨다.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 채 전개하는 ‘데드풀과 울버린’은 ‘노 베이스’ 관객들에겐 진입장벽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구한 사람들이 우리를 구한”다고 믿는 ‘영웅’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무사히 함께하는 범상한 기쁨은 누구든 예습 없이 공명할 수 있다. 이야말로 데드풀의 위악으로 감춘 의협과 울버린의 봉인 불가한 의기의 매시업이다.

‘Rejoice’-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당연시 해왔던 것들을 오랫동안 기다려 되찾을 때의 감격. 코로나19를 지나 마침내 공연장에서 마스크를 벗고 조우한 음악 팬들은 이미 한 차례 절감했을 테다. 밴드 역시 이 네 번째 정규작을 제작하며 잠시 잃어버렸던 아티스트로서의 일상을 탈환하는 환희를 맛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보컬 후지하라 사토시의 성대결절로 인해 라이브 투어를 전면 중단하고, 이후 1년 반 가까이 레코딩 중심으로 고군분투한 끝에 탄생한 작품이니 말이다. 데뷔 이후 간만에 마주한 음악에의 절실함, 힘든 시기를 함께 참고 기다려준 팬들의 헌신. ‘소중함에 대한 소중함’을 재차 깨닫고 겨우내 건네는 이 낭보엔,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어린 표정이 묻어나는 듯하다.
전작 ‘Editorial’의 마지막 트랙인 ‘Lost In My Room’에서 이어지는 첫 곡 ‘Finder’부터 강한 보컬 이펙터를 동반해 자신들이 새로운 챕터에 돌입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16곡이라는 큰 볼륨이지만 은근히 대놓고 파격을 즐기는 그들이기에 결코 지루함은 없다. 히게단식 시티팝 리바이벌의 그루브함이 넘실대는 ‘Get Back To 人生’를 지나 대중을 상대로 한 밴드 사운드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타이트한 드러밍이 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ミックスナッツ’,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대중적 면모와 미스터 칠드런의 ‘innocent world’가 가진 정서를 가져와 재해석한 듯한 ‘日常’ 등 미처 중반을 지나기 전까지도 인상적인 곡들이 한가득이다.
싱글을 제외한 신곡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うらみつらみきわみ’. 레트로한 신시사이저 톤을 내세워 응원의 메시지를 전송하는 이 곡의 다소 당황스러운 아웃트로는, 고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이들이기에 지을 수 있는 자그마한 미소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보컬이나 연주 역량도 뛰어나지만, 이렇게 트렌드에 기댐 없이 탄탄한 완성도의 곡을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블랙뮤직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음악적 소양에 있지 않나 싶다. 어둠을 뚫고 마침내 거머쥔 이 환희를, 이제는 우리가 맘껏 누릴 시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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