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륵 칵칵 TTT’(‘GOING SEVENTEEN’ 유튜브)
오민지: 3년만의 엠티, 세븐틴의 ‘TTT’는 단순히 일상을 탈피해 떠나는 여행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비일상도 일상적으로 함께하는 멤버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걸 모든 말과 행동에 담아낸다. 엠티의 시작, 장보기를 걸고 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잘 못한다는 정한에 조슈아가 선뜻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고, 호시가 한 번에 “탈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우지가 있다. 그러나 결국 장보기는 가위바위보의 승패에 관계없이 장보기를 ‘잘하는’ 팀에게 넘어가고, 언제까지 잘하는 애들이 할 거냐는 말에 “평생 그러자.”고 이야기하며 엠티가 시작된다. 그 순간 가위바위보, 장보기, 회식, 휴가, 여행과 같이 짧은 한때를 나타내는 단어들로 설명되었던 엠티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평생’이라는 영원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팀 세븐틴의 어떤 순간 중 일부가 된다.
이때, 그 ‘평생’이 ‘변하지 않고’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유 또한 멤버들이다. 입수를 내기로 걸고 한 배드민턴 게임이 끝나도 그 누구도 입수하지 않고, 장을 보면서도 “고기 먹으면 또 원우가 고추 찾겠지? 그 다음에 문준휘가 버섯으로 또 뭐해주려고 버섯 사오라고 그랬어.”라며 멤버들을 떠올리고, 자신이 만든 김치볶음밥의 맛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주방을 떠나지 못하는 조슈아의 행동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이 다 먹겠다고 걱정을 덜어주고, 도겸이 ‘무X마’와 ‘너X리’ 중 무엇을 먹을지 멤버들이 물어보면서도 내심 ‘무X마’를 먹고 싶어 하는 걸 눈치채고 자신들의 의견을 번복한다. ‘어목조동’ 게임이 어려운 준과 디에잇을 위해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은 세븐틴만의 ‘위무냐오쇼우’ 게임을 할 때에도, 웃으면 지는 게임에서 모두가 웃기는 대신 ‘웃기고 싶은 사람이 웃길 때’에도, 농구 실력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럭비공’으로 농구를 할 때에도, 세븐틴은 연신 “재밌다.”, “너무 좋다.”, “난 좋았어.”와 같은 칭찬으로 대화 사이의 공백을 메운다. 매번 승부를 내면서도 승패도, 우열도 아닌 함께 노는 서로에게만 관심 있는 하루. 그렇게 2024년의 ‘TTT’는 디에잇의 건배사처럼 서로를 너무 잘 알아 좀 더 이해하게 된 세븐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3년 만에 우리 TTT. 우리 많이 성장했고, 그 3년 안에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우리 이 팀이 변하지 않게 계속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더 원더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신비. 숭배라는 기만을 걷어내고 페티시의 더께를 들추어 육박하는 신비.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더 원더스’는 신비하다. 토스카나의 후미진 마을에 열두 살 젤소미나(마리아 알렉산드라 룽구)의 집이 있다. 강퍅하나 “전략을 모르는” 아버지 볼프강(샘 루윅)의 지휘하에 가족들은 외딴 규칙을 준수하는 공동체를 이룬다. 독일에서 온 그와 이탈리아 출신 안젤리카(알바 로르바케르), 사이 네 명의 딸, 함께 일하고 먹고 자는 “객식구” 코코(사비네 티모테오)는 양봉에 텃밭 농사와 목축을 곁들여 살림을 꾸려나간다. 격리된 북새통의 장녀 젤소미나는 아버지보다 유능하다. 아버지 대신 나무에 올라가 벌을 친다. 벌의 떼죽음이 전염병 때문이라고 넘겨짚는 아버지와 달리 “독”이 원인임을 알아차린다. 젤소미나에게는 벌의 침이 독이 아니라 이웃이 뿌린 강력한 제초제가 독이다. 꿀은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한다. 방 한편에 화장실이 딸린, 멸균 처리하지 않은 생활 공간에서 아동 인력이 채밀기에 대어 놓은 무거운 양동이를 번쩍 들어 끊임없이 교체한다. 세상은 개선을 요구하고 규정에 어긋난 작업장을 정비해야 가느다란 밥줄이나마 건사한다. 아버지는 당장의 지원금에 혹해 자잘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열네 살 독일 소년 마틴(루이스 휠카)을 위탁하기로 결정해 버린다. 전기는 귀하니 낮의 햇빛을 들이마셔 비축해 두고 싶은 젤소미나, 사랑 노래 가사를 외워 몰래 읊조리는 젤소미나는 고단한 가장의 근심 이면에 달리 도래할지 모를 미래를 향한 기대를 품는다. 그래서 이끌린다. 가족의 터전이 TV 프로그램 ‘전원의 기적’ 로케이션 장소로 낙점됨으로써 진행자 밀리(모니카 벨루치)는 젤소미나 앞에 ‘여신’의 현현처럼 등장한다. 전통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팀에게 돈 한 자루와 유람선 여행을 제공하겠다는 경연 대회. 진정한 구식을 평가하는 신식의 쇼. 감독은 ‘더 원더스’ 속 ‘전원의 기적’을 통해 시골을 무구한 청정의 무대로 삼는 판타지화를 비판한다. 꿀 같은 삶은 없다. 끈적하고 달콤한 주수입원이 흘러넘치기라도 하는 날엔 온몸으로 그러모아 주워 담아야 한다. 고립무원과 히피의 이미지를 추출해 타인의 삶을 점유하는 난폭한 시혜는 그 삶의 당사자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도록 부추긴다. 젤소미나에게 밀리(모니카 벨루치)는 처음 접한 구체(具體)의 미(美), 상금은 현실의 숨통을 틔울 산소 호흡기다. 아버지의 반대를 꺾고 동굴에서 열린 ‘전원의 기적’에 가까스로 참가한 젤소미나 가족은 우승하지 못한다. 천연은 얼마나 연약한지. 극도의 무첨가 유기농이어서 불법이기까지 한 토산 꿀은 방송의 구미에 맞는 원시를 흉내 낸 인조 모피를 두른 가공한 전통과 어깨를 견주기 힘들다. 젤소미나가 더 어릴 때 소망했던 낙타를 사느라 기껏 탄 지원금을 탕진한 아버지의 깜짝선물에 허망한 얼굴을 하는, 좀 자란 젤소미나는 천연이 끝내 상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 천연에 있다. 언어가 자취를 감추는 순간. 어떤 꿀이냐는 물음에 얼버무리는 아버지, 휘파람을 부는 마틴, 젤소미나의 입에서는 말 대신 생동하는 벌들이 튀어나온다. 요령과는 먼, 쏘이고 부대끼며 쌓은 친교.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간택 받을 이유 없는 실존적 삶의 양태를 길어 올린다. TV 콘테스트 카메라가 철수한 동굴의 두 그림자를 가만히 비추는 응시, 변화를 재촉하지만 보장은 없는 냉엄한 ‘오늘’, 젤소미나와 가족들이 증발하듯 사라지기 전 최초의 휘파람을 분 그 ‘오늘’의 젤소미나로 신비의 의미를 헹군다. 나는 분명한 실패와 미지의 가능성을 동시에 생각했다. 젤소미나를 두방망이질 치게 한 ‘유행가’를 뒤로하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SUMMER FREAK: Sun, Rain, Love’ - 진보
강일권(음악평론가) : 오늘날 K-팝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좀 더 각광받는 진보(JINBO the SuperFreak)는 원래 한국 R&B/소울 씬에서 굵직한 이력을 쌓아온 베테랑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스스로 잘하고 싶은 욕구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망을 담아 지은 이름처럼 그는 언제나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다.
네오소울, 슬로우잼, 힙합 소울 등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R&B 음악을 뿌리 삼아 2000년대 이후의 컨템퍼러리 R&B 사운드와 힙합 그리고 일렉트로팝까지 껴안으며 전 세대의 R&B를 아우른다. 새 앨범 ‘SUMMER FREAK: Sun, Rain, Love’만 들어봐도 그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밀조밀한 샘플 소스, 여유로운 힙합 비트, 청량한 무드로 마감한 사운드가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로운 ‘Happy Habits (Feat. Kenny The Jedi)’, 재즈와 일렉트로닉을 재료 삼은 실험 위로 하이퍼팝 요소를 살짝 끼얹은 ‘내 맘대로’, 레게와 R&B의 기분 좋은 만남을 주선한 ‘Lychee Lime Juice’ 등을 들어보라. 진보가 기꺼이 열려 있으며 능숙하게 지배할 수 있는 장르의 범주가 고스란히 드러난,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곡들이다. 한편 가사는 그의 음악 세계를 독보적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진보는 종종 미국 R&B에서 영향받은 소재를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한국어 표현을 통해 래퍼의 스토리텔링처럼 풀어내곤 한다.
이번 앨범에선 ‘여름 같은 놈’이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무드와 방식이 충돌하는 작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질적이면서도 빠져들게 하는 가사의 맛이 매우 인상적이다. ‘SUMMER FREAK: Sun, Rain, Love’에서 진보는 자기자신, 상대방, 가족, 이웃 등 여러 종류의 사랑을 노래한다. 그의 설명처럼 “철 지난 이야기 같지만 오히려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말이다. 더불어 대중과 미디어의 오랜 무관심 속에서도 음악적으론 한국의 R&B가 여전히 풍요롭다는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끔 한다.
‘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김복숭(작가): 많이들 언더독 스토리라고 부르는 약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한 권의 가격으로 네 가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이비 우즈의 ‘사라진 서점’은 독립 출판이 아닌 책으로는 작가의 첫 출간이다. 세상이 마침내 그녀의 재능에 눈을 뜨고 주목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책은 무겁고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하는 이야기를 무려 세 가지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1920년대 런던, 파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더블린을 배경으로, 가족의 학대와 정략결혼을 피해 도망치는 오펄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 시점을 배경으로는 또 다른 두 명의 더블린 사람들의 시점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가정부로 일하게 된 마서와 잃어버린 에밀리 브론테의 원고를 찾고 있는 헨리의 이야기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등장인물들이 겪는 문제는 종종 어두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다양성에 맞서 쟁취하는 작은 승리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을 고양한다. 마법 같으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줄거리 전개도 눈에 띈다. 때로는 소설이 취한 반전이 너무 편리하다고 느껴지기도 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책을 얼마나 기발하게 만드는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더독 스토리, 마법 같은 미스터리, 포스트(트윗)에 올리기에 완벽한 길이의 명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책 ‘사라진 서점’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가 이비 우즈는 최근 후속 소설도 출간했는데, 한국어 번역본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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