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게티 이미지

팬데믹 이후 팝 음악계에서 두드러지는 경향 중 하나는 여성 아티스트와 창작자의 비중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애넌버그 포용성 이니셔티브(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에 걸쳐 다양성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 그 가운데에 하나는 음악 업계의 성 평등에 대한 것이다. 올해 초 새로 나왔던 연구 보고서는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2년간의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를 분석했다. 노래는 1,200곡이지만, 아티스트는 2,299명이다. 그중 여성 아티스트 비중은 2020년 20.2%에서 2023년 35.0%까지 매년 증가한다. 여성 솔로만 따지면 더 급격해서, 2020년 22.5%부터 2023년 40.6%에 이른다. 연구 기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숫자다. 창작자는 어떨까? 여성 송라이터는 19.5%로 전년 대비 5.4% 증가, 여성 프로듀서는 6.5%로 3.0% 증가했다. 두 숫자가 2022년까지 평균 수준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기록적이다. 송라이터 중 여성 비중의 평균은 13.4%인데, 매년 11~14% 수준이었다. 여성 프로듀서는 평균 3.2%였다.

위 연구 결과를 장르별로 보면 몇 가지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팝 장르의 여성 비중이 가장 높아 대표성이 높고, R&B/소울 장르에서 여성이 빠르게 증가한다. 반면 대중적인 인기를 상징하는 핫 100 차트로는 경향을 파악하기 힘든 장르도 있다. 댄스/일렉트로닉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연 시장 붕괴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고, 대중적 관심도 그만큼 멀어지면서 2020년 이후 핫 100 히트 곡을 손에 꼽을 정도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댄스/일렉트로닉 장르야말로 DJ/프로듀서로 대표되는 창작의 영역에서 여성의 활약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팬데믹과 별개로 좀 더 장기간에 걸쳐 장르 내부의 동력을 가진 방향성이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다시 말해 팬데믹이 온라인/비대면을 일상화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직접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여성 아티스트가 업계의 관행적인 역학과 제한에서 벗어나 마케팅과 제작 기회를 확보했다는 해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일렉트로닉 음악 페스티벌에서 성별 비중을 추적하는 팩츠(FACTS) 보고서를 보자. 2012년 9.2%에 불과한 여성 DJ 비중은 매년 한 번도 감소하지 않고 꾸준히 늘어나, 2023년 30.0%에 이른다. 전체적인 비중만이 아니라 흐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스타 DJ의 존재는 어떨까? ‘DJ 매거진(DJ Mag)’이 매년 발표하는 톱 100 DJ 목록은 업계 전체를 대변하는 대형 이벤트다. 2017년 전체 목록에서 여성 DJ는 4팀에 불과했다. 2018년 6팀, 2019년 8팀, 2020년에 13팀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이후 2024년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DJ 시장 전체에서 여성의 비중에 대한 추정은 다양하다.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10~15% 수준의 숫자가 적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 전체에서 프로듀서의 비중과 비교한다면 한결 높은 숫자인 것도 사실이다.

올해의 톱 100 목록을 다시 보자. 페기 구는 10위다. 그는 최근 몇 년간 가장 성공적인 여성 DJ다. 2019년 80위로 최초 진입하고, 매년 10단계 이상 순위를 올려 2023년에는 9위에 올랐다. 2023년 ‘(It Goes Like) Nanana’는 댄스 씬을 넘어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했고, 영국 싱글 차트 5위, 네덜란드와 벨기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여성 최초의 톱 10이자 하우스 장르의 1위 DJ가 되었다. 2024년에는 데뷔 정규 앨범 ‘I Hear You’를 냈고,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 프리마베라 사운드, 글래스턴베리 등 일렉트로닉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 서면서 DJ로서 누리기 힘든 바이럴과 스트리밍을 누리고 있다.

샬롯 드 비테는 16위다. 그는 지난 수년간 테크노 장르의 넘버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020년을 전후한 테크노 장르의 재도약을 상징한다. 2010년대 이후 댄스 뮤직 페스티벌이 대형화되면서 큰 무대에 적합한 트랜스, 프로그레시브, 빅 룸 등의 서브 장르가 장기간 지배적인 위치를 누렸다. 각 장르가 조금씩 다른 기원과 접근법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멜로디와 보컬을 강조하면서 소리와 감정을 점진적으로 쌓아 올리고 분출과 해소로 이어지는 형식은, 대형 무대의 화려한 연출과 맞물려 EDM이라는 일반적 용어에 대한 인식을 대체하는 정도에 달했다. 올해도 톱 100 목록의 선두에는 마틴 개릭스, 데이비드 게타, 디미트리 베가스가 자리한다.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어둡고, 빠르고, 반복적이며, 비트에 중점을 두는 테크노가 대안적 위치를 점유한 것은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샬롯 드 비테의 2018년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은 관객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미처 깨닫기 전에 그것을 들려주고, 언젠가 벌어질 일을 현실로 만든 순간이다.

사라 랜드리는 75위로 2024년 순위에 처음 진입하면서, 하드 테크노 장르를 대표하게 되었다. 테크노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높은 BPM은 일종의 경쟁이 되었다. 최대 130 중반대의 BPM은 공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DJ 세트의 시작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150 이상까지 달려간다. 이 경향은 팬데믹 직전의 테크노가 그랬던 것처럼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인기를 얻으며 대형 페스티벌의 라인업으로 포착되었다. 사라 랜드리는 2024년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에서 하드 테크노 DJ로는 처음 메인 스테이지에 올랐다. 과거라면 지나치게 빠르고 극단적이라고 여겨졌을 스타일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과 함께한다면 공연의 에너지를 빠르고 확실하게 끌어올려 집단적 흥분과 해방을 이끈다. 비주류적 일렉트로닉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집단적 경험의 공식은 팝 음악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트래비스 스콧으로 대표되는 현대 힙합의 공연이 더 이상 랩 트랙을 연이어 선보이는 무대가 아니다. 아티스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분위기를 만들고, 열광적 충성심을 지닌 팬들이 함께 공연을 완성한다. 하드 테크노가 대형 LED, 폭죽과 색종이가 터지는 대형 무대보다 전통적인 레이브 파티의 분위기에 더 어울리는 이유다. 사라 랜드리의 대표 퍼포먼스는 여전히 2023년의 보일러 룸일 것이다.

언급한 세 명의 DJ는 톱 100 목록에서 하우스, 테크노 같은 비대중적 하위 장르의 대표성을 띤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DJ이 매거진’은 비주류 장르를 중심으로 얼터너티브 톱 100 DJ를 따로 뽑았다. 2021년의 목록에서 샬롯 드 비테 1위, 페기 구 4위였다. 또 다른 테크노 스타 DJ 아멜리 렌즈와 함께 니나 크라비츠, 노라 엔 퓨어 등 톱 10의 절반이 여성이었다. 이미 검증된 장르와 유명 DJ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형 페스티벌보다 작은 규모의 클럽과 이벤트에서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일 때 여성 DJ가 더 많은 기회를 얻었을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는 결과다. 우리는 현재 이 가능성의 선두에 선 아티스트들이 메인 스테이지의 낮 무대 혹은 서브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 댄스/일렉트로닉 업계에서 최정상의 무대는 좀 더 완고하여 팝계에서 비욘세나 테일러 스위프트를 봤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보고 싶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