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3일, 아티스트 다즈비(DAZBEE)가 공식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위버스에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팬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다즈비는 2011년 처음 우타이테(歌い手) 다즈킨으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약 10년 넘게 꾸준히 커버 곡을 업로드하며 활동해온 다즈비는 2021년 말에 일본의 다양한 레이블과 협업하며 메이저 가수로 데뷔하고, 2024년 9월 28일에는 처음으로 예스24 원더로크홀에서 단독 콘서트 ‘DAZBEE Live In Seoul:sincerely’를 여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을 넘나들며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다즈비의 현재 유튜브 구독자 수는 140만 명이다. 지난 2월 7일 공개한 yama의 ‘가짜 얼굴(偽顔)’ 커버 영상은 31만을 훌쩍 넘겼다. 가장 높은 조회 수를 달성한 영상은 2017년에 업로드한 게임 ‘그림 노츠’의 OST ‘잊혀지지 못할 언어(忘れじの言の葉)’ 커버로, 무려 7,301만 회를 달성했다. 이를 계기로 1년 후인 2018년에는 ‘그림 노츠’ 후속작인 ‘그림 에코즈’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다즈비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성실함을 들 수 있겠다. 유튜브 채널에 커버 영상을 올릴 때, 다즈비는 항상 다음 영상이 업로드될 날짜를 예고하며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날짜가 지켜지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스타뉴스에서 2022년 ‘밤비’ 발매 기념으로 진행한 일문일답에서도 다즈비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은 ‘꾸준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즈비의 가장 큰 무기는 몽환적이고 호소력 짙은 음색이다. 2021년 다즈비가 피처링을 맡았던 곡 ‘실링 라이트 팬’의 작곡가 주버나일(Juvenile) 은 다즈비의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에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렇다. 다즈비는 특히 서정적이고 감성을 건드리는 노래에 강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주제가 ‘바람이 되어(風になる)’ 커버나 아이묭의 ‘Marigold’ 커버를 들어보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리지널 곡인 ‘시간을 넘어와줘’와 ‘Fairy’는 이러한 다즈비만의 강점을 극대화한 노래다.

다즈비가 이런 노래만 잘 부르는 건 아니다. 소화할 수 있는 음색과 음역의 폭이 넓은 편이라, ‘밤비’처럼 디스코풍에 시티팝 스타일을 가미한 노래와 ‘Blue Bird’처럼 투명한 고음을 곧게 내질러야 하는 노래 사이를 자유로이 누빈다. 무엇보다 다즈비가 대단한 점은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 무언지, 스스로가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곡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즈비는 어떤 곡을 커버하든 자신의 노래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티스트와의 듀엣 곡에서는 상대의 목소리에 조화로이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색을 고집스럽게 지킨다.
무엇보다도 다즈비는 우타이테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보컬로이드 곡을 가장 잘 소화해낸다. 초창기 보컬로이드(Vocaloid)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오리지널 곡을 커버한 영상을 보면 다즈비에게 우타이테로서의 자질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즈비는 자신이 활동하던 보카로 신과 우타이테 업계를 깊게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으며, 이에 기반하여 곡을 해석하고 재창조한다.

그런데 우타이테란 대체 무엇일까? 우타이테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초에 ‘니코니코동화’가 있었으니
2006년, 일본에서 ‘니코니코동화(ニコニコ動画)’라는 이름의 동영상 플랫폼 사이트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줄여서 ‘니코동’이라고도 불린 이 사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자들이 댓글을 다는 대신 직접 영상에다 실시간으로 자막을 달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자막은 영상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는데, 시청자는 자막이 흘러가는 속도와 위치 그리고 자막의 크기와 색깔 등을 지정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시청자는 직접 영상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영상 제작자와 함께 이를 다양한 연출 장치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니코동은 창작자와 시청자 모두가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니코동에는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영상들이 올라왔지만,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가 등장하면서 판도는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하츠네 미쿠의 인기에 힘입어 니코동은 크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트렌드를 견인하는 축에 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2007년에 음악 관련 소프트웨어 회사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음향기기 제조업체인 야마하와 함께 개발한 보컬로이드는 그 당시 보이스웨어를 넘어선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인 보컬로이드는 멜로디와 가사를 입력하면 노래하는 목소리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기에 그간 자신의 곡을 불러줄 보컬을 찾지 못해 웹을 떠돌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부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 아티스트들은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를 구입해 자신이 쓴 곡에 노래를 입힌 다음 니코동에 업로드했는데, 그들은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라는 뜻의 ‘보카로P(ボカロP)’라 불렸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보카로P 중에는 요네즈 켄시(당시 활동했던 닉네임은 ‘하치’)와 요아소비(YOASOBI)의 아야세(Ayase), 요루시카의 작곡가 나부나(n-buna) 등이 있다.
하지만 당시 보컬로이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기계음이 심했기에, 거부감을 느껴 “사람이 부르는 버전을 듣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니코동에는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던 아마추어 보컬리스트들도 많았다. 이런 니즈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것이 바로 ‘불러보았다(歌ってみた, 우탓테미타)’라는 이름으로 보카로 곡을 커버하는 영상들이었다. ‘우타이테’란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이다
당시 가장 활발했던 서브컬처 동영상 플랫폼이었던 만큼, 한국의 우타이테들도 당연하게 니코동 위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다즈비 역시 니코동에 ‘판다시카(パンダシカ)’라는 노래를 투고(니코동에서 업로드를 가리키는 용어)하며 데뷔했다. 여담이지만 이 ‘판다시카’는 요네즈 켄시가 ‘하치’ 명의로 투고했던 두 개의 곡 ‘판다 히어로(パンダヒーロー)’와 ‘마트료시카(マトリョシカ)’를 매시업한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한국인 우타이테들이 니코동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즈비와 2023년 7월에 합동 콘서트 ‘THE ECLIPSE’를 개최하기도 한 아티스트 라온(Raon)도 니코동 우타이테 출신이다. 특히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우타이테들의 메이저 데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현재 일본 음악 씬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중 아도(Ado)와 야마(yama), 레오루(Reol)는 니코동에서 우타이테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메인스트림에 진출한 케이스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진을 잊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종종 유명한 보카로 곡을 커버해서 올리곤 한다. 하치로서 만들었던 노래를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해둔 요네즈 켄시처럼 말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황선업은 이들을 가리키는 ‘보카로네이티브 세대’라는 용어에 대해 다룬 바 있다.

니코동을 넘어 유튜브로 그리고 세계로
다시 우타이테로 돌아와 보자. 우타이테라는 말을 처음 접한 이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흔히 알려진 커버 가수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하지만 둘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우리나라에도 제이플라(J.Fla)나 탑현, 그렉처럼 커버 곡을 올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현재 ENA 채널에서도 커버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커버'도 방영하고 있는 만큼 그쪽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타이테는 단순 커버 가수와는 다르다. 보통 ‘우타이테’라고 하면 니코동을 기반으로 보카로 곡 위주로 노래를 투고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지금은 니코동이 몰락하고 유튜브가 주류 동영상 플랫폼 사이트로 떠올랐기 때문에, 니코동에서 데뷔하지 않았거나 유튜브에서만 주로 활동함에도 스스로를 우타이테라 말하며 활동하는 우타이테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국내 우타이테인 헤비(hebi.)가 그런 경우이다.
이처럼 우타이테의 정의는 이제 니코동을 벗어나, 보카로 곡이나 애니메이션 송 등 서브컬처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곡들을 주로 커버하는 유튜버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우타이테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즉, 우타이테는 서브컬처적 모먼트를 구현해내는 특정 군의 아티스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도나 야마는 물론이고 2020년 ‘여섯 번째 감각(第六感)’으로 스트리밍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레오루, 자신이 만든 보카로 곡을 셀프 커버한 ‘드라마트루기’로 1억 뷰를 달성한 이브(Eve)가 그 대표적인 예다. 지금 그들은 명백히 트렌드의 첨단에 서서 문화를 견인하고 있다. 과거 니코동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즈비의 활약이 반갑다. 어릴 때부터 우타이테를 위시한 오타쿠 문화를 접한 MZ세대가 음악 소비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음악 씬에도 서브컬처적 요소가 점차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주버네일은 피처링 아티스트로 다즈비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글로벌하면서도 일본의 서브컬처 씬과 보카로 씬에 정통하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다즈비를 필두로 한 국내 우타이테들의 활동은 앞으로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라는 경계를 그리고 국가라는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로운 아티스트 상을 제시할 것이다. 다즈비가 한국 음악계에 가져올 신선한 충격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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