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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김민경
일러스트도아마(@_aamado_)

1929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반드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문학과 글쓰기는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젖히고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2025년, 현재 문학과 독서 시장을 이끄는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을까? 이에 위버스 매거진의 비정기 특집 기획 시리즈 ‘THE INDUSTRY’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을 맞아 ‘여성과 독서’라는 주제로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인 ‘책 읽는 여자들’에서는 현재 독서 시장의 의미와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 그리고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여성 업계 종사자들과 작가,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연간 독서량이 감소하는 시기에도 왜 한편으로는 독서 열풍이 부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독서가 필요한지를 가늠해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요즘 ‘텍스트힙(Text-Hip: ‘텍스트’와 ‘멋지다’, ‘개성 있다’는 뜻의 신조어 ‘힙’의 합성어)’ 트렌드로 젊은 세대가 책 읽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반대로 ‘힙’해졌다고 하는 것은 희소성을 가졌다는 뜻으로 그동안 책을 읽지 않는 인구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베스트셀러 담당자 김현정의 말처럼, 지금은 가장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힙’해진 사회다. 2023년 문체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약 60%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연간 독서율이 2019년 55.7%에서 2021년 47.5%, 2023년 43.0%로 매년 하락했을 뿐 아니라 연간 독서량 역시 각 7.5권, 4.5권, 3.9권으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그러나 동시에 2024년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교보문고를 비롯한 온라인 서점을 합해 일주일도 안 돼 100만 부 판매를 이뤄내는, 우리나라 출판 역사상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보문고 김현정 담당자에 따르면, “수상 소식 당일 광화문점에 있었는데 남아 있는 한강 작가의 도서 재고가 많지 않아 바로 동났고, 온라인 주문이 밀려들어와 곧바로 품절이 났”으며, “도서 인쇄가 밀려들어도 독자들의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다. 연간 독서량의 지속적인 감소와 문해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있는 시대임에도 한편에서는 ‘텍스트힙’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SNS에 독서 후기나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북스타그램, 북톡(Book+tikTok), ‘왓츠인마이책장’과 같은 콘텐츠가 유행하기도 한다.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방문객 수는 최소 15만 명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요컨대 책은 지루하지만 텍스트는 ‘힙’한 시대다.

밀리의 서재 신사업본부 오리지널 기획팀 이지향 팀장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대해 “지금은 머치를 구매하는 것이 곧 독서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이북 리더기를 꾸미는 것이 열풍이 되는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독서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유대감으로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독서란 단지 글을 읽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보문고 김현정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기도 했다. “북 커버는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한 사생활 보호의 역할도 있지만, 거기에 더해 개성을 살려 책에 더 다양한 꾸미기를 하는 ‘책꾸’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꾸미고, 머치를 구매하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에 독서의 의미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 독서는 더 이상 ‘완독(글의 뜻을 깊이 생각하며 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검색 엔진과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얻고, 여가 시간에는 디지털 매체나 OTT 등을 통해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한 책을 서너 시간씩 붙잡고 읽을 수 있을까요?” 밀리의 서재 경영기획실 경영기획팀 구다원 PR 매니저의 질문은 ‘책맹(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에 독서의 효용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최근의 독서 시장은 독자가 한 권의 책을 다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실물의 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기존의 종이책이 가진 시공간적인 한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자책의 등장은 물론 책을 듣는 오디오북 등 다양한 독서 방식이 공존하게 된 이유다. 밀리의 서재 이신형 팀장은 “오디오북 이용자는 30~40대 여성이 주인데, 이분들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오는 여유 시간을 채우는 형태로 오디오북을 소비”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독서의 편의성을 증대하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밀리의 서재 문재희 AI서비스본부 AI서비스팀 팀장은 독자들이 AI 페르소나 챗봇, AI TTS, AI 독파밍(AI와 대화하며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기능) 등 AI를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책을 더 잘 읽고, 기록하고, 리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수많은 디지털 매체나 OTT 등 독서라는 행위의 경쟁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독서 시장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흥행은 상징적이다. 해당 채널에서는 ‘소설 속 최악의 애인월드컵 16강’처럼 책 소개를 유튜브에서 유행했던 게임과 결합하거나, 개인이 스스로의 일상을 콘텐츠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민음사 직원들의 일상을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책이 아닌 넷플릭스 작품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SNS 채널이 사람들이 책보다 훨씬 자주 접하는 ‘생활’이 된 시대에, 민음사와 같은 출판사는 그런 생활 방식 속으로 들어가 독서를 권한다. 교보문고 김현정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요즘 대중은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으로 책의 존재를 알게 되거나,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소개로 책이라는 콘텐츠에 익숙해지기도 해요. 반드시 텍스트를 읽지 않더라도 여행을 통해서, 강연을 통해서, 저자의 말을 통해서도 책에 대한 관심을 얻기도 합니다.” 이는 교보문고가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다양한 기획전을 열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밀리의 서재가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라는 동명의 뉴어덜트 소설을 활용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것처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독서와 결합하는 이유일 것이다. 밀리의 서재 독서당 무제한 독서팀 이신형 팀장은 밀리의 서재의 도서 선정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기본적으로 구독자가 많이 찾는 베스트셀러 신간을 가장 중요하게 노출하지만, 그 외에도 좋은 책이 많이 발굴될 수 있도록 외부 이슈나 트렌드도 많이 반영하려고 해요. 새로 개봉하는 영화의 원작이 있거나 역주행하는 도서들을 빠르게 반영해 메인에 노출시키고 있어요”. 유튜브, 넷플릭스, SNS에 비해 책은 너무나 오래된 매체다. 그사이 독서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독서의 이유도 방식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서를 권하는 사람들은 책 바깥의 세상과 독서를 결합하면서 누군가는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 이신형 팀장의 말처럼 독서가 변화하고 있는 이유일 것다. “독서라는 활동 자체의 장벽이 낮아져야 독서를 통해서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어요. 독서는 어려운 행위가 아니에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독서가 끊임없이 변해야 해요.”

독서 시장의 변화와 함께 그 책을 쓰는 사람들 또한 변했다. “최근 젊은작가상부터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여성 작가들이고, 올해 젊은작가상은 7명이 다 여성이에요. 1990년대, 2000년대에 굉장히 많이 쓰이던 ‘여류 작가’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어’가 됐죠.”. 김겨울 작가 겸 북튜버의 말처럼 최근의 문학 시장은 여성 작가들이 주도한다. ‘일간 이슬아’로 작가의 글을 구독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이슬아 작가, 블로그와 ‘일기 딜리버리(일기와 산문을 메일과 우편으로 보내는 서비스)’, ‘콜링포엠(전화로 시를 발표하는 서비스)’ 등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며 낯설게 여겨지던 시를 SNS 친화적인 형태로 풀어낸 문보영 시인,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에서 독서를 콘텐츠로 풀어내며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김겨울 작가 등 시대적 흐름과 독서 시장을 결합하는 흐름을 여성 작가들이 주도하며 활약하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김초엽 작가, 정세랑 작가, 정보라 작가 등으로 대표되는 SF 장르가 과거 장르 문학이라는 이유로 일부 ‘폄하를 받기도 했던’ 편견을 이겨내고 시대적인 흐름을 문학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독자들과 문단의 큰 호평을 얻기도 한다. 이 모든 새로운 시도, 새로운 작가들의 등장과 생존 그리고 성장은 극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세랑 작가는 “작품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장르 작가와 문단 작가의 원고료가 대놓고 달랐어요. 장르 문학을 쓴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폄하를 받기도 했고요.”라고 이야기하며 “그때보다는 나아졌지만 남아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돌아보면 넘어온 벽들이 아득하면서도 동료들이 많아져 훨씬 든든합니다.”라며 함께 현실을 헤쳐온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작가들의 연대는 직업적인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작가’가 직업이 되고, ‘글쓰기’가 노동이 될 수 있게 사회를 변화시켰다. “예술가들은 돈을 벌기 어렵고,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여겨지고, 글을 써도 원고료를 받는 대신 잡지 구독권이나 혹은 잡지에 글이 실리는 게 대가의 전부인 때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시스템을 조금씩 바꿔나갔던 거고요.”라는 문보영 시인의 말처럼 작가의 직업적 처우 개선의 중심에는 연대와 더불어, 창작 역시 노동이라는 뚜렷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작가 활동이 노동으로서 인정받게 되고, 수익이 발생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마르지 않는 창작’이 수반되어야 하는 작가의 직업적인 특성은 이들에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안전한 지지대를 계속 필요로 하게끔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들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문보영 시인은 “아직도 글쓰기가 노동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직업 의식이 없으면 이 일을 해 나갈 수 없으니까요. 가끔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쓰게 되고, 그로 인한 고통과 갈등이 생겨요.”라며 창작에 임하는 직업인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내면적인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의 말처럼 원고료나 수업, 구독료 등의 수익을 통해 경제적인 부분이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작가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은 수없이 많다. 여기에 더해 여성 작가들은 또 다른 문제들을 겪는다. 김겨울 작가는 “여성 작가들이 내는 책 중 본인의 내밀한 경험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차별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자는 굵직한 이야기를 못 쓴다.’, ‘여자는 자기 내면의 작은 이야기밖에 못 쓴다.’라는 댓글이 달려요. 가끔 제 글을 읽고 칭찬의 의미로 ‘여성스럽지 않은 글을 쓰시네요.’나 ‘여자셨군요.’라는 댓글이 달릴 때도 있어요.”라며 직업인 ‘작가’보다 성별인 ‘여성’이 앞서는 현실에 대해 털어놓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겪은 내면의 갈등과 변화를 창작에 반영하는 순간, 이것이 사회적 담론이 아닌 지엽적인 개인의 일이라는 또 다른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자신을 드러내는가? 문보영 시인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뿐이에요. 제 마음에도 들고, 독자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그 어딘가에 있는 글쓰기를 어떻게 찾아낼지 혹은 이를 어떻게 포기할지”를 스스로 찾고,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혹은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게 제 일이니까 계속하는 건데 그 자체가 사회적 인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저항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어요.”라는 김겨울 작가의 말처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편견에 대한 사회적인 저항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혹은 “99의 경우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 끝나지만 1의 경우 살아 있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요.”라는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읽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의 변화가 그 사람의 삶을, 나아가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 될 수도 있다. 어떠한 편견이 있을지라도, 글을 쓸 수 있기에 글을 쓴다. 그 글은 내면의 작은 이야기일 수도, 큼직하고 굵직한 사회적인 저항일 수도 있다. 

“20대, 30대, 40대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회적인 위치에 있는지를 언어화하는 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삶의 가능성들이 책을 통해 언어화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자신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독서의 의미 자체가 다를 수 있어요.” 책을 쓰는 작가이자 책을 읽는 북튜버이기도 한 김겨울 작가의 말은 독서가 여성에게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밀리의 서재 이지향 팀장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겪고, 사회·정치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큰 단절이나 고립을 경험하게 된 독자들이 같은 취향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책을 통해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자립하고, 자기만의 삶이나 취향을 탐구하는 것에 목마른 여성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언어화하고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읽는다. 자신이 과거에 겪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쓴다. 독서를 통해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들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썼던 1929년, ‘숙녀’들은 칼리지 연구원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을 구비해야만 도서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5년, 지금의 여성들은 책을 읽고,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고, 더 나아가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 요컨대 여성들은 독서를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로부터 계속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갔다.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독서는 자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배우는 행위에서 배제되던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독서는 여성에게 단순한 학습과 교육 이상의 무언가라 할 수 있다. 연간 독서량이 점점 줄고 일각에서는 독서 시장이 위기에 처했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그럼에도 여전히 독서의 가치를 믿으며 미래를 꿈꾸는 여성 업계 종사자들과 창작자들 그리고 독자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자기만의 방’들을 2025년에 다시금 사유해봐야 하는 이유다. “읽고 쓰며 자신만의 언어를 닦고 축적한 사람들에겐 잘못된 슬로건을 의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정세랑 작가는 독서를 통해 복잡한 가치들을 사고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면 위험한 슬로건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도 한층 밝아지리라 희망한다. 정세랑 작가에게 독서가 위험을 의심할 수 있는 힘이라면 김겨울 작가에게는 반대로 위험한 여성이 되는 방법이다. 김겨울 작가에 따르면 여성의 독서는 역사 속에서 ‘위험’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몇 세기 전에는 책을 읽는, 공부하는, 아는 여성에 대한 굉장한 배척과 멸시가 있었죠. 여성이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책을 읽는 여성은 늘 위험한 존재로 취급이 되어 왔는데요.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책을 많이 읽어서 위험한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서는 취미와 취향의 영역이 되었다. 위기에 처한 독서 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하며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독서의 의미와 방식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여전히 여성에게 독서는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며 스스로를 사유하는 방법으로서 힘을 갖는다. 이제 “젊은작가상 7인은 전부 여자”인 시대가 되었고, “‘여류 작가’라는 단어는 사어가 됐”다. “여성들은 문화 생활로서 책을 읽”는 동시에 독서를 통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자립”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오디오북을 들으며 나 자신을 위해서, 자기 계발과 성장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 한다. 이는 2025년에도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여성 작가들이 존재할 수 없거나 무시당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편견이 만든 ‘여류’라는 단어를 사어로 만든 것처럼, 여성들은 독서를 통해 그들의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다. 독서는 그들에게 이전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들, 꿈꿀 수 없었던 것들과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지 못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생각하고 의심할 수 있게 되는 힘이 됐다. 1929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던진 문제의식은 2025년에도 여전히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에 ‘책’에서 가장 소외되고, 주변화되었던 여성들은 독서가 ‘텍스트힙’이라는 표현처럼 취향으로 좁혀진 시대에도 여전히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를 둘러싼 담론을 고민한다.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정세랑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은 의외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기대보다 빨리 전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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