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블스 플랜: 데스룸’ (넷플릭스)
이희원: “여러분이 폭력이나 절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게임이 허용하는 어떠한 계획도 가능합니다. 오직 승리를 위해서만 플레이하십시오.” 주최자 ‘데블’의 말처럼, ‘데블스 플랜: 데스룸’은 단순한 두뇌 게임이 아니다. 연합과 개인 플레이, 동맹과 배신까지. 모든 전개는 승리를 위한 플레이어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전 시즌에 비해 두 명의 출연자가 늘어나는 변화는 물론, 출연진의 절반이 감옥동에서 생활하며 갈등을 유발하는 환경은 긴장감을 더한다. 감옥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며 1인용 게임을 해결한 미스코리아 출신 대학생 이승현, M&A 전문 변호사 손은유 두 여성의 연합이 빛나는가 하면, 배우 저스틴 H. 민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바둑 기사 이세돌처럼 연합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출연자도 있다. 시즌 1에서 과학 유튜버 궤도가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형성한 연합이 시스템에 저항하는 과정이 주된 서사를 이끌어 갔다면, 시즌 2에서는 의리와 승리 등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선택이 재미를 더한다. “형은 아예 탈락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신 거예요?”라는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출신 모델 최현준의 물음에 이세돌은 “탈락이 문제가 아니라 우승하려고 오는 거잖아.”라고 답한다. 결국 승자는 한 명. 플레이어들은 때때로 내 편을 만들고,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몰기도 하고, 거침없는 태도로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하기도 한다. 약자가 될수록 게임에서 불리해지는 감옥동과 히든 스테이지의 가혹한 환경은 마치 현실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다. “왜 게임에서 이기면 좋은 형, 동생 안되는거야? 어쨌건 이건 한 명 살아남는 게임이고.” 포커 플레이어 세븐하이는 룰에 충실하면서도 게임과 사적인 감정을 철저히 분리했고, 감옥동에서 서로에게 의지했던 아나운서 강지영과 세븐하이, 손은유는 데스매치를 진행하면서도 함께한 시간에 대한 유대감을 표현했다. 동맹과 배신이 교차하고, 감정과 전략이 충돌하는 세계 속에서 시청자들은 인간에 대해 한 걸음 더 생각하게 된다.

아웃캐스트(Outkast),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입성
강일권(음악평론가): 그래미와 빌보드 뮤직 시상식이 현재의 대중음악과 아티스트가 이룬 성과를 기록하기 위한 행사라면, 로큰롤 명예의 전당(The Rock & Roll Hall of Fame) 헌액식은 아티스트가 과거부터 쌓아온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헌액 자격은 첫 앨범 발매 후 25년이 지나면 얻게 되며, 음악적 영향력, 창의성, 대중성, 비평적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된다. 이름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지만, 전통적인 록 밴드뿐 아니라 팝, 소울, 힙합 등등,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로큰롤’은 이제 장르를 의미하기보다 혁신과 반항, 창조성과 문화적 전복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바로 이곳에 힙합 듀오 아웃캐스트(Outkast)가 마침내 이름을 올렸다. 난 아웃캐스트를 종종 외계인 듀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예측할 수 없고 미스터리한 음악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남부 힙합의 위상을 알린 데뷔작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1994)부터 남달랐다. 지금 들어보면 전통적인 힙합 앨범이지만, 당시엔 남부 스타일과 서부 스타일이 혼합된 신선한 프로덕션의 작품이었다. 이후 두 번째 앨범 ‘ATLiens’부터 듀오의 음악은 훨씬 더 혁신적으로 나아갔다. 범우주적이며 실험적인 사운드, 장르의 경계를 신경쓰지 않는 과감한 시도, 독창적인 컨셉트 등등, 그들이 발표해온 작품은 언제나 감탄하게 했다. 이들의 음악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은 써야한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측은 아웃캐스트를 선정한 이유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아웃캐스트는 장르를 넘나드는 사운드와 끊임없는 혁신으로 힙합을 재정의하며 ‘더티 사우스(Dirty South)’가 랩 음악의 오랜 전통인 동부와 서부 씬과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펑크, 소울, 재즈와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진 아웃캐스트의 독특한 사운드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힙합 그룹 중 하나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웃캐스트는 ‘Hey Ya!’와 같은 굉장한 곡을 통해 모든 표준에 도전하고 모든 장르에 반항하며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평이다. 아웃캐스트의 헌액은 단지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음악은 지금도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만약 아웃캐스트의 음악을 잘 몰랐다면, 지금이 바로 들어볼 기회다. 그리고 아마 깨닫게 될 것이다. 왜 이들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필자의 추천 트랙: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 ‘ATLiens’, ‘Rosa Parks’, ‘B.O.B’, ‘Ms. Jackson’, ‘Hey Ya!’, ‘Roses’, ‘Mighty O’, ‘Morris Brown’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김복숭(작가): 글자에 담긴 이야기든,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이야기든, 모든 성장 서사에는 비슷한 맥락이 있다. 주인공이 세상을 헤매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그것을 찾아내는 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 여정의 핵심이 그 이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해 왔던 모든 것들이 그것을 위함이었음을, 또 동시에 그것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 것. 그런 의미에서 미셸 자우너의 첫 책 “H마트에서 울다”는 작가의 성장서사를 담은 자서전이자, 미국인 아버지를 만나 한국에서 이민을 온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이다. 자우너는 어머니의 암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어가고,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더듬는다. 지나치게 과잉 보호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어머니의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답답함, 그렇게 떠났던 집으로 돌아와 점점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던 시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공간을 떠나야 했던 순간—그의 삶의 장면은 책의 핵심 비극이 되고, 그는 고향이라는 공간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작가 미셸 자우너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리드 싱어이며, 어머니의 임종은 그룹의 첫 메이저 앨범 발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그룹의 음악에는 삶과 뿌리에 대한 탐구, 비극을 받아들이는 과정 모두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우너는 책에서 말한다. “세상이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 것만 같았다. 이미 고통을 느껴본 사람들과 앞으로 느낄 사람으로.” 비록 때로는 아플지라도, 그의 깨달음은 우리를 하나로 엮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를 뿌리내리고 연결시킨다. 이 깨달음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노래 “Posing in Bondage”에서도 들려온다. 자우너는 책 출간 이후에도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어머니의 고향에서 1년을 보내며 한국어를 배웠고, 밴드는 최근 앨범 “For Melancholy Brunettes (& sad women)”을 발매했다. 곧 다가올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서 한국 팬들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무대를 더욱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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