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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Ado Staff Instagram

“충분하다 못해 용암처럼 흘러넘쳐 끓어올랐다.” 2024년 2월 24일 첫 월드 투어 ‘위시(Wish)’로 내한한 아도(Ado)의 첫 공연을 봤을 때의 감상이었다. 얼굴 없는 가수, 목소리 하나만으로 일본을 평정한 가수, 인터넷 창작 가수로 노래를 커버하여 업로드하던 무명의 ‘우타이테(歌い手)’부터 시작해 도쿄 국립경기장에 단독으로 선 최초의 여성 솔로 가수. 이 모든 설명과 상찬을 지워버릴 정도의 강렬한 경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대에 어둠이 내리고, 아도가 입을 떼고 나서부터의 기억은 감탄과 경이로움의 신세계가 되었다. 마치 그가 보컬로 열연한 ‘원피스: 필름 레드’의 주인공 우타의 능력처럼, 목소리를 들은 현장의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가 창조하는 음악의 유토피아에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니코니코동화 사이트에서 처음 무명의 아도를 발견했든, 애니메이션 타이업과 일본 음악이 한국에서 유행해 그의 이름을 처음 접했든, 르세라핌의 ‘Unforgiven’ 일본 버전 피처링 등 대형 가수들과의 협업으로 관심을 가졌든, 압도적인 가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재회의 순간이 빠르게 찾아왔다. 아도가 5월 16일 두 번째 월드 투어 ‘히바나(Hibana)’로 돌아왔다. ‘위시’ 투어로부터 1년 조금 넘었으니 굉장히 빠른 재내한이다. 최근 일본 가수 중 이처럼 짧은 텀을 두고 한국을 방문한 사례는 2023년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의 4,000석 공연 이후 이듬해 1만 8,000석 규모의 인스파이어 아레나로 무대를 옮겼던 요아소비와 올해의 아도가 유일하다. 2010년대 말 OTT 서비스 보급과 팬데믹을 거쳐 더욱 강력해진 애니메이션 산업, 그리고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타이업(タイアップ)에서 음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가운데에 다소 폐쇄적이었던 자국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을 확인하고 활발하게 진출하는 일본 음악의 두 선두 주자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비단 요아소비와 아도 뿐 아니라 열렬한 환호와 매진 세례를 통해 한국 공연의 성공에 확신을 갖고 속속 현해탄을 건너는 최근 일본 인기 가수들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더는 낯설지 않을 일이기도 하다. 

동일한 일산 킨텍스 공연장에 모인 8,000여 명의 관객. 아도가 등장하며 익숙함의 적막은 곧바로 깨졌다. 분명 수없이 들은 노래고 무대도 경험했건만, 공연장을 지배하는 보컬의 힘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사각의 케이지 안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실루엣으로부터 펼쳐지는 노래의 천라지망이 총 22곡을 부르는 동안 앙코르 전까지 약간의 조정 시간을 제외하고는 휴식 없이 관객석을 뒤덮었다.

보컬의 융단 폭격! 연신 감탄과 환호가 나오던 객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보컬 차력 쇼’와 ‘보컬 서커스’였다. 대중에 익숙한 ‘시끄러워’, ‘번쩍번쩍(ギラギラ)’, ‘쇼(唱)’의 히트 곡 메들리와 더불어 ‘원피스: 필름 레드’를 장식한 ‘역광(逆光)’과 ‘물거품 자장가(ウタガタララバイ)’와 함께 1년의 기간 동안 발표한 신곡과 커버 무대가 치솟는 기대를 끝없이 증폭했다. 모든 퍼포먼스가 아도만이 가능한 유일무이의 경지였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다양한 자아가 깨어날 수 있음을 경악케 한 ‘룰(ルル)’과 처절하게 울부짖는 ‘사랑해줘 사랑해줘 사랑해줘(愛して愛して愛して)’는 그중 백미.

1년의 세월 동안 아도는 더욱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파격적이고 파괴적이었던 데뷔 싱글 ‘시끄러워(うっせぇわ)’의 충격과 함께 일본 대중음악계에 등장한 신성은 2022년 ‘원피스: 필름 레드’의 대성공과 함께 시장을 제패했고, 이제는 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첫 내한 공연을 마치고 두 달도 되지 않았던 2024년 4월 27일과 28일, 아도는 일본 여성 솔로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도쿄 국립경기장에서의 ‘心臓(심장)’ 콘서트로 일본 공연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1억 뷰 이상 영상만 10개, 유튜브 구독자 812만 명으로 일본 가수 중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도는 현재 여성 솔로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다.

2025년 4월 13일 개최한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오프닝 공연은 아도에게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서브컬처의 극단적이고 날 선 태도를 거친 샤우팅과 연약한 미성으로 전달했던 아도가 엑스포 아레나에서 세계 앞에 더욱 큰 꿈을 노래했다. 힘찬 목소리만으로 얼굴 없는 가수라는 핸디캡과 다듬어지지 않은 소수 커뮤니티의 문법을 대중의 영역으로 확장한 아도의 업적이다.

성장세를 증명하듯 올해 공연에는 아도의 근간을 이루는 우타이테의 철학과 큰 공연으로 넓어진 시선이 공존했다. 보컬로이드 작곡가 벌룬의 원곡 ‘샤를(Charles)’, 데코니나(DECO*27)의 ‘히바나’ 커버를 새로 들려줬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스텔라장의 ‘빌런(Villain)’. 지난해 10월 아도가 최초로 커버한 외국어 곡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번안 없이 한국어 그대로 노래했다는 점에서 내심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아도였다. ‘빌런(Villain)’과 더불어 아도는 시아(Sia)의 히트 곡 ‘Chandelier’와 앙코르의 시작을 알린 ‘Rockstar’까지 완연한 세계구급 가수임을 연이어 증명했다.

킨텍스 홀을 가득 채운 팬들도 적극 호응했다. 스탠딩 관람이 허락되지 않았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첫 곡이 시작되기도 전에 플로어석에 앉은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2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내내 열띤 호응과 응원을 보냈다. 합창의 크기도, 아티스트를 향한 호응도, 곡에 대한 이해도 월등히 뛰어났다. ‘위시’의 경험이 일본 인기 가수를 처음 마주하는 경험의 차원이었다면, ‘히바나’는 음악가의 가치를 꿰뚫고 있는 팬들이 만든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의 순간이었다. 완숙기에 접어든 한국 내 일본 음악의 인기다.

아도의 커버 앨범 ‘歌ってみた(노래해보았다)’ 표지에는 좁은 옷장 녹음실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는 아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밝은 사교성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던 히키코모리 소녀는 세상과 소통하는 대신 게임을 즐기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즐거웠다. 그런 아도가 목소리의 힘만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울분을 토해내게 하고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가수로 거듭난 사실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이야기다.

앙코르를 앞둔 멘트 시간에서 아도 역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현장에 있었던 많은 팬이 ‘고독도 때로는 나쁘지 않다.’는 아도의 위로를 회고하고 있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르지 않더라도 온전히 내면의 불꽃을 지켜 나간다면, 그 힘을 모아 단단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 터뜨린다면, 분명 사회는 바뀔 수 있음을 아도는 증명하고 있다.

‘위시’의 시작을 알렸던 ‘신시대(新時代)’가 ‘히바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광경이 그래서 아름다웠다. “끝없는 음악이 더욱 전해질 수 있도록 꿈을 보여줄게(果てしない音楽がもっと届くように / 夢を見せるよ”. 아도의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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