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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미(‘씨네 21’ 기자), 윤해인, 강일권(음악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Jurassic World 인스타그램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배동미(‘씨네21’ 기자):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밀림 속에서 공룡의 유전체 실험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연구소 내부에는 실험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공룡 D렉스도 감금돼 있다. 그곳에서 우연한 계기로 사고가 일어나는데, 한 연구원이 먹은 초콜릿 바 포장지가 차폐실 잠금장치에 딸려 들어가는 바람에 문이 열리고 거대한 D렉스가 뛰쳐나와 과학자들을 집어삼킨다. 1993년 개봉한 ‘쥬라기 공원’의 리부트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비현실적이지만 재치 넘치는 오프닝 신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돌연변이 공룡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붉은 조명과 사이렌 소리, 오리지널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사운드트랙은 관객의 심박수를 올리기에 충분하다. 고작 초콜릿 바 껍질이 무시무시한 공룡을 세상에 나오게 한다는 상상은 이제 관객 눈앞에 무시무시한 현실로 다가온다.

인류가 공룡을 부활시킨 지 32년, D렉스가 기아나 밀림으로 뛰쳐나온 지 17년이 더 흘렀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룡을 신기해하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이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됐다. 공룡에 주목하는 건 자본가들뿐이다. 대형 제약회사는 크고 강한 심장을 가진 공룡의 유전자를 채취해 신약을 만들려 하고, 제약회사 직원 마틴(루퍼트 프렌드)은 정보요원 조라(스칼렛 요한슨)와 고생물학자 루미스(조너선 베일리)에게 천만 달러를 약속하며 공룡의 피를 뽑아 오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건 인간과 한 프레임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공룡들의 발톱과 아가리들이다. 천만 달러가 아니라 살아서 섬을 빠져나가는 게 주인공들의 급선무가 된다.

왜 다시 ‘쥬라기 공원’인가.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관객의 근본적인 질문에 초콜릿 바 껍질로 재치 있게 답한다. 하지만 오프닝 신에서의 유머가 위험천만한 D렉스를 불러냈듯 이내 우리의 웃음을 거두고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게 쫓기는 공포를 선사한다. 이를 통해 에드워즈 감독은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새삼 일깨운다. 관객을 캐릭터들과 함께 끝도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으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정도 생존했지만 공룡은 100만 년 살았음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공룡처럼 인간도 언젠가 멸종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과거 ‘쥬라기 공원’,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도 충분히 즐길 만한 자기 완결성을 갖춘 작품이다. 그 ‘새로운 시작’이 반갑다.

‘민음사TV’ (유튜브)
윤해인: ‘민음사TV’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잘 알려진 출판사 ‘민음사 출판 그룹’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흔히 출판사 유튜브라면 기대할 법한 신간 홍보나 작가 인터뷰 대신, 출판사 직원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민음사의 편집자나 마케터, 디자이너들은 요즘 읽는 책을 소개하고, 독서나 취미를 위한 아이템을 자랑하거나 언박싱하기도 한다. 출판사의 회의 장면이나 점심시간처럼 소소한 하루 일과를 브이로그처럼 담고, 마치 ‘오피스 시트콤’마냥 ‘타로 카드’가 취미인 직원이 동료의 미래를 점치거나 평소 요리를 즐기는 직원들 사이에서 요리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평균 근속 연수가 14.3년인 부장님들끼리 신입 사원 시절의 ‘실수 배틀’을 벌이기도 하며,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한다. 기업의 홍보 유튜브라기보다 직장인 브이로그 같은 친근감은 ‘파주의 아이돌’*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친화력을 겸비한 마케팅부 조아란 부장의 유려한 진행력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의 채널인 ‘민음사TV’만의 유튜브 친화적인 매력을 만들어낸다.

물론 출판인들의 모든 대화는 ‘기승전‘책’’으로 귀결된다. 다만 ‘민음사TV’는 ‘책은 어렵지 않다.’고 설파하기보다, 책을 가까이하는 여러 직원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책의 본연적 재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민음사 직원들은 출근길에 읽은 책을 익숙하다는 듯 가방에서 꺼내들고, 새로 생긴 자신의 취미를 위해 구입한 책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동시에 편집자들조차 마감에 쫓기며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한 권의 책을 완독하기 전에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병렬 독서’법을 설파하며, 독서는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 있는 동시에 어떤 정답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월드컵 형식을 빌려 ‘세계문학전집’에 담긴 고전문학의 핵심 줄거리를 소개하고, 심오하고 어려워 보일 수 있는 고전을 친근한 형태로 풀어낸다. 짧은 ‘쇼츠’ 영상이 대세가 된 시대에 ‘텍스트’의 효용성은 위기를 맞았음에도, ‘민음사TV’는 도리어 ‘쇼츠’를 통해 고전문학의 깊이를 영업하는 동시에 독서의 허들을 낮춘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 약 3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게 된 영향력을 기반으로,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배우 박정민을 초대하거나 독서를 취미로 지닌 걸그룹 MEOVV(미야오)의 멤버들을 초대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장을 만들기에 이른다.

‘텍스트 힙’과 ‘문해력의 위기’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오가는 시대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약 15만 명의 방문객이 모였지만, 한국의 성인 독서율은 나날이 하향 곡선을 그린다는 뉴스가 동시에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이 ‘오피스 시트콤’과 ‘인문 교양’ 채널을 오가는 민음사 직원들의 일상과 말을 따라가다 보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책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왜 여전히 사람들이 책을 필요로 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제가 겪어본 그 어느 중독보다 활자 중독이 제일 벗어나기 힘들어요.”라는 민음사 김민경 편집자의 말처럼, ‘민음사TV’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과 독서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책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의미, 텍스트로 된 이야기가 선사하는 재미 그리고 향유의 기쁨. ‘민음사TV’가 전하는 독서의 본질적 즐거움이다.
*한국의 출판사 및 출판 업체가 모여 있는 파주출판도시를 의미

‘허쎄’ - 추다혜차지스 
강일권(음악평론가): 아마도 ‘추다혜차지스’란 밴드가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이 얘기부터 하고 싶다.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꼭 한 번 들어보세요. 그 시간을 분명히 보답받으실 겁니다.” 나처럼 취향에 맞았다면 짜릿한 환희를 맛보게 될 것이며,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전례 없이 획기적인 음악을 감상한 경험은 남을 것이다. 그만큼 추다혜차지스의 음악은 놀랍다. 그들이 2020년에 발표한 데뷔작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르를 섞어 만들었다. 무가(巫歌: 무당의 노래)와 R&B, 펑크(Funk)의 결합. 여기에 힙합, 레게, 덥, 록 등의 장르도 스며들어서 주술과도 같은 음악이 탄생했다. 추다혜차지스는 그해 한국 대중음악의 ‘독창성’을 대변하는 이름 중 하나였으며,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한국은 물론 세계 대중음악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탁월한 얼터너티브 앨범이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흐른 지금, 밴드의 두 번째 앨범 ‘소수민족’이 당도했다. 서도민요 창법에 기반을 둔 추다혜의 보컬이 여전히 감정을 쥐락펴락하고, 이른바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라 이름 붙여진 밴드의 음악과 연주 또한 변함없이 황홀하다. 그중 ‘허쎄’는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정신적 지향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둥둥거리는 베이스 기타와 강렬하게 흩뿌려지는 라이브 질감의 드럼 비트 그리고 공수(*주: 신령의 뜻을 전달하는 말로, 굿이나 점사 과정에서 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에 가까운 보컬이 어우러져서 압도적인 감흥을 선사한다. 이토록 신묘하고 탁월한 음악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새 앨범 ‘소수민족’을, 더 나아가 첫 앨범이었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까지 들어보시길 권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 시간을 분명히 보답받으실 겁니다.”
*‘추다혜차지스’는 민요와 록을 결합한 밴드 씽씽 활동을 통해 주목받았던 추다혜, 윈디시티(Windy City)와 소울소스(aka 노선택과 소울소스) 출신의 이시문, 윈디시티, 까데호(Cadejo), 써드체어(3RD CHAIR) 출신의 김재호, 플링 출신의 김다빈이 결성한 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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