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마름모

“저희도 어떤 공연이 될지 모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7월 6일 일요일 예스24 원더로크홀을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마름모 주성민 대표가 귀띔했다. 메탈 밴드 스키조의 기타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해 홍대 앞 클럽 브이홀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 인디 음악의 역사와 함께해온 그는 최근 레이블 아티스트 이승윤과 함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에게도 이날 공연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이승윤의 범상치 않은 공연 ‘2025 LEE SEUNG YOON CLUB GIG ‘POKZOOTIME’(이하 ‘폭주타임’)’이었다.

클럽 공연을 표방한 만큼 ‘폭주타임’은 일반적인 공연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주최 측은 최소 0원부터 최대 5만 4,321원까지의 금액을 자유롭게 지급하고 퇴장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첨 기회를 잡지 못한 팬들은 7월 5일 원더로크홀 바로 위층에 있는 멀티플렉스 CGV 신촌아트레온지점을 포함한 전국 7개 영화관에서 실시간으로 ‘폭주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서울 곳곳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방식을 연상케 하는 무료입장, 자율퇴장 정책이었다.

이승윤은 형식을 실질로 증명했다. 러닝타임 미정, 세트리스트 없음. 미리 정해둔 것 없이 현장 팬들의 목소리를 받아 곡을 정하고 노래하는 폭주의 시간이 계속됐다. 시작부터 객석에서 튀어나와 ‘폭죽타임’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띄운 이승윤은 ‘검을 현’과 ‘리턴매치’까지 멘트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로큰롤의 에너지에 몸을 맡기고 무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모든 결정이 즉흥적이었다. 페스티벌 세트리스트와 앨범 전곡 라이브를 고민하다 “일단 돌리면서 생각하겠다.”라며 첫 정규 앨범 ‘폐허가 된다 해도’를 순서대로 연주했다. 솔로 어쿠스틱 무대, 풀 밴드 연주까지 놓칠 수 없는 재치와 열정의 용광로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베이스 송현우, 드럼 지용희, 기타 조희원과 이정원, 건반 복다진으로 꾸려진 이승윤 밴드의 총 러닝타임은 4시간 40분. 오후 6시에 시작한 무대가 끝나고 밖을 나서니 어느덧 밤 10시 40분이었다. 무대 한쪽 전자레인지와 라면 조리기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5일 공연에서는 정말로 무대 위에서 식사하며 팬들과 담소를 나눴다는 뒷얘기를 듣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승윤에게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이승윤의 음악 행성계 한가운데의 항성이다. 2011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며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디밴드 따밴과 알라리깡숑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숱한 공연장을 돌며 경력을 쌓았다. 지금도 손꼽아 셀 수 있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수더분한 청년 이승윤의 2010년대 라이브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존 발표 싱글을 모아 2016년 공개한 첫 정규 앨범 ‘무얼 훔치지’와 함께 그의 노래 제목처럼 ‘무명성 지구인’, 방구석 음악인으로 살아가던 이승윤의 행성계는 좀처럼 안정화되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아 나가기만 고민하기에도 벅찬 나날들, 창작의 가능성보다 창작의 쓸모를 고민하던 나날들이다. 자연히 이승윤은 음악의 쓰임과 그 음악을 만드는 자신의 삶을 탐구해 나갔다. ‘정말 내 것이 있는 건가?’를 고민하며 2017년 라디오 프로그램에 써 붙인 익명의 사연, “이 앨범은 위대한 공식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거대한 시공에 짧은 문장을 새겨보려는 제 나름의 호흡입니다.”라 고백한 2018년의 EP ‘달이 참 예쁘다고’의 소개 글이 이 시기의 기록이다. 

이승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집착하거나 요행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광활한 내면의 우주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이를 배우고 깨치며 증명하기 위해 본인의 언어를 개발하고 실험했다. 의심하고 도전하면서도 겸손한 과학자의 자세, 그것이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으로 대중이 본격적으로 그에게 집중하기 전부터 이승윤이 오래도록 음악을 대해온 태도였다. 오디션 프로그램, 클럽 공연, 국내외를 장식하는 록 페스티벌, 방송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이승윤이 음악으로 전개하는 고유의 영역이 중심에 있다. 처음에는 현학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의 노랫말을 이해하고 나면 단어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명백하고 애석하게도 우린 서로를 직접 보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노래 안에서 도킹합시다.”. ‘도킹’의 설명을 빌리자면 그에게 음악은 언어이며, 우리는 음악을 통해 서로가 습득한 언어적 상대성을 통해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서든 가장 큰 노랫말과 선율의 힘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광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 이후 이승윤이 빠르게 팬덤 ‘삐뚜루’를 확보하며 든든한 행보를 형성한 비결이다. 

4시간 40분 동안 홀린 듯 공연을 관람했다. “목이 쉬면 공연 끝이다.”, “중간에 나가도 된다.”, “이 공연이 정말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품던 예술가와 달리 팬들은 목이 터질 듯 노래를 따라 부르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음악 하나만으로도 긴 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원래 이승윤 공연의 러닝타임은 꽤 긴 편이다. 평균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다. 2023년의 첫 전국 투어부터 지난해 정규 3집 ‘역성’ 공연과 각종 페스티벌 무대까지 공연도 꽤 많이 봤다. 그런데도 무정형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이 있었다. 성에 안 차면 멈추겠다는 엄포 하에 기록을 남겼던 ‘캐논’의 펑크 록 버전 편곡과 스크리밍은 이승윤의 2025년을 상징하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마이크 앞을 벗어나 혼자만의 목소리로 공연장을 꽉 채운 ‘이백서른두번째 다짐’과 제이콥 콜리어를 연상케 하는 현장 관객과의 소통이 빛난 ‘가끔은’ 등 다양한 시도도 이어졌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공연에서 발굴한 가능성이 반짝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의 게스트 공연이었다. 이승윤은 과거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공연을 펼치던 시기부터 전유동으로부터 받은 음악적 영감과 인디 씬에서의 생존 가이드를 언급하며 음악계 동지를 스테이지 위로 안내했다. 두 장의 정규 앨범과 다수의 EP 및 싱글을 발표하며 섬세한 포크 음악을 들려준 전유동에 이날의 원더로크 홀은 그가 여태까지 선 무대 중 가장 큰 무대였다. 송현우, 복다진과 함께 3인조 포크 구성으로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와 ‘이끼’, ‘스피리아’를 노래하는 전유동의 무대에 현장의 팬들은 따뜻한 응원과 공감의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 언더그라운드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티스트 간 컬래버레이션의 의미를 넘어 이승윤이라는 존재가 동고동락했던 인디 씬의 많은 음악가들과 여전히 함께 호흡하고 있으며, 그들의 지지자들이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증명하는 장이었다.

주 대표의 우려와 다르게 ‘폭주타임’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게스트 공연 이후 잠깐의 쉬는 시간으로 준비한 어쿠스틱 무대를 지나 이승윤은 언제나 그렇듯 공연장을 번개처럼 뛰어다니고 더 큰 소리를 유도하며 탈진 직전까지 노래를 쏟아냈다. 그의 설명대로 이 공연은 ‘차력쇼’가 아니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소중히 간직해온 노래가 아직 세상에 더 많이 울려 퍼져야 한다는 듯, 이승윤은 규격화된 공연에서의 아쉬움을 모조리 털어내며 아직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거세게 포효했다. 매년 하기는 어려운 ‘폭주타임’이 매년 열리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꼭 원더로크홀이 아니더라도 더 작은 공연장에서 혹은 더 큰 공연장에서 이승윤의 이야기는 계속 더 크게 확산될 테다. 지난해 ‘역성’ 앨범으로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오른 이승윤의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음악하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제 노래가 이 시대의 감정이나 순간과 공명하고 있음을 느낄 때다. (...) 앞으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서랍, 주머니, 화분 속에 틈틈이 깃드는, 시대를 잊지 않는 음악을 하겠다.” ‘폭주타임’에 참여한 1,000여 명의 팬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이승윤의 시대가 폭주하고 있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