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이자 퇴마사인 ‘헌트릭스’와 이들을 저지하고자 K-팝 아이돌이 된 악령 ‘사자보이즈’의 이야기를 다룬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 공개 이후 90개국 이상에서 넷플릭스 상위 10위권에 진입했고, 이 중 40개국 이상에서는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공개 5주 차에도 시청 수 2,580만 회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영화 중 최초로 5주 차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더불어 영화의 OST ‘Your Idol’과 ‘Golden’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 나란히 1·2위를 기록했고, 그중 'Golden’은 빌보드 핫 100 4위를 기록하기도 하며 애니메이션 OST 사상 최고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품의 인기 속,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악령 아이돌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의 영어 보이스 액팅을 맡은 안효섭 배우에게 첫 보이스 액팅을 도전한 소감과 더불어 진우라는 캐릭터를 함께 만들고, 연기하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노력에 대해 물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진우’를 연기한 소감이 궁금해요.
안효섭: 처음 제안을 받았을 당시 제작진으로부터 세 장의 그림과 함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어떤 작품인지 또 어떤 의도로 제작을 하려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장르나 소재, 제작진분들의 열정에 끌리고 설렜다면, 시나리오를 전달받고 읽을 때부터는 ‘진우’라는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진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면의 고통과 외면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잖아요.(웃음)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보이스 액팅에 도전한 만큼 목소리로만 연기를 한다는 것이 큰 도전이기도 했어요. 그만큼 저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녹음할 당시 마이크 옆에 카메라를 두고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움직임까지 함께 촬영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안효섭: 제작진분들과 인사를 하는 시간은 있었지만 실제 작업은 영상 화면 접속으로 이루어졌어요. 제작진분들은 미국에 계셨고, 저는 한국에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그야말로 과정을 함께하는 작업이었어요. 어떤 날은 스케치만 있었고 또 다른 날에는 상대 역할의 목소리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었고요. 그리고 매번 녹음할 때마다 마이크 옆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제 표정과 움직임도 함께 촬영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장면들이 애니메이션 속 진우에게 반영됐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전지적 독자 시점’의 평범한 회사원인 ‘김독자’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 리더 진우라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건 어땠어요?
안효섭: 우선 ‘전지적 독자 시점’은 10년 넘게 연재된 웹소설의 유일한 독자이자 평범한 회사원인 ‘김독자’가 자신이 읽던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면서 멸망해 가는 세상을 동료들과 함께 구하는 이야기인데요. 이 작품을 연기할 때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회사 생활에 지치고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김독자의 모습을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수 있도록, 그를 보편적인 인물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한편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작업할 때는 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즈’의 진우라는 김독자와는 또 다른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한 장면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할 때도 있었어요. 각 버전마다 훨씬 더 상기되거나 혹은 반대로 절제된 감정 표현이 필요했고, 발음이나 억양, 템포나 강세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했어요. 입 모양과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물론 중요한 작업이었고요. 두 작품 모두 각 장면 마다의 상상력이 요구되고, 제가 참여한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보니 각 작품을 연기할 때마다 캐릭터를 철저히 분리해서 접근해야 했는데요. 감사하게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작 과정에 밀도 있게 참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작진분들의 섬세한 배려가 있었기에 매번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버전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을까요?
안효섭: 처음 제작진과 줌 미팅을 할 때 읽었던 대사가 있는데, 진우가 더피를 통해 루미에게 편지를 전하고 두 사람이 기와지붕 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루미가 수면 바지를 입고 나오거든요.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죠.(웃음) 그때 진우가 “츄츄~” 하면서 놀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정말 다양한 버전으로 녹음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종적으로 제가 준비해간 버전이 영화에 사용되었죠.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르나 작품에 따라 연기 방식이 다르듯,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전달해야 하는 보이스 액팅 역시 평소 연기에서 사용하는 톤, 호흡, 발음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잖아요.
안효섭: 아무래도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오는 다양한 차이점이 존재해요. 실사 연기에서는 얼굴, 몸짓, 호흡 전체가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지만, 보이스 액팅은 오직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기에 다른 부분에서의 집중력이 요구되더라고요. 평소 다뤄왔던 감정의 결을 어떻게 소리로만 녹여낼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고, 그 과정이 저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진우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는데요. 과거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밝은 톤의 실생활 영어를 구사했다면, 이번에는 진우의 내면이 가진 고통이나 책임감 그리고 희생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이 있었어요. 연기의 질감 자체가 달라졌다고 느꼈고, 그 변화가 목소리에 반영된 것 같아요.
진우는 단순하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캐릭터 같아요. 저승사자이자 K-팝 아이돌이고, 겉으로는 능청스럽고 장난스럽지만 내면은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고통받는 인물이잖아요.
안효섭: 진우는 여러 얼굴을 가진 인물이에요. 데몬이면서 무대 위에서는 아이돌이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시간 살아온 존재로서의 외로움과 상처, 책임감이 녹아 있죠. 그래서 저는 진우를 단순히 멋진 캐릭터가 아닌, 깊은 내면의 결핍을 지닌 인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특히 루미와의 관계에서는 억누른 감정이 차오르다 어느 순간 터져 나오고 또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을 쌓아가는 방식을 많이 고민했어요. 마지막에 진우가 “You gave me… my soul back”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사를 연기할 때 진우의 진심과 바람이 한순간에 설명이 되는 느낌이 들었고, 저도 함께 울컥했습니다. 저 또한 팬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와 갈망이 묻어 있는 대사라 특히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진우는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악령이 되었고, 마침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구원받았잖아요.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직면하고, 이를 이겨내고 지금까지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효섭: 진우는 어쩌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물이었을지도 몰라요.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용기는 진짜 강함에서 비롯되잖아요.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모두 그 선택들이고, 지금 여기서 행복을 느끼려면 고통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도파민의 시대에서 순간의 쾌락보다는 삶의 균형과 중용의 가치를 중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여러 OST와 챌린지 중 ‘Free’를 커버한 것일까요? ‘Free’는 진우와 루미가 억눌러왔던 감정을 표출하고, 귀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를 소망하는 노래잖아요.
안효섭: ‘Free’라는 곡을 들었을 때, 진우의 감정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존재지만, 결국엔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선택을 하는 진우의 서사와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했어요. 챌린지 중에서는 팬분들이 비파 댄스를 재해석한 버전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특히 ‘Soda Pop’을 패러디해주시는 모습을 볼 때는 진짜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모두들 너무 멋져요!(웃음) 요즘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많은 매체를 만나고 있는데 어딜 가나 기자분들이 매번 ‘진우 오빠’라고 불러주시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많이 궁금해해주셔서 저도 즐겁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웃음)
진우와 안효섭 씨가 서로 닮은 부분도 많은 듯해요. 저승사자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를 소화하면서 영어 대사에서는 캐나다 이민으로 영어에 능숙한 안효섭 씨의 배경과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며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 과거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했거든요. 진우를 연구하거나 연기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과거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을까요?
안효섭: 확실히 진우를 연기하면서 제 경험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저 역시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런 감정들이 진우를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팬분들의 사랑을 통해서 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 마음들도 진우와 자연스럽게 겹쳐졌어요. 저도 평소 팬분들에게서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받거든요.(웃음) 제가 배우로서 존재할 수 있는건 저를 봐주시는 분들이 있고 또 팬분들이 응원해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업도 어디선가 저를 지켜보고 조용히 응원을 보내주시는 저 나름대로의 팬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안효섭: 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단순한 액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안의 결핍과 어둠 그리고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더 서로가 필요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우리말 중에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나답다”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진우라는 인물을 통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나답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가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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