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챤미나라는 아티스트가 걸어온 길은 자못 흥미롭다. 자신을 괴롭힌 루키즘에 맞서 미의 기준을 재정의하고자 했던 ‘BIJIN(美人)’, 언어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수록 곡들을 통해 자신에게 장르나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선언한 앨범 ‘Naked’, 만삭의 몸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균열을 가한 ‘섬머소닉 2024’에서의 퍼포먼스와 더불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10대들의 연대를 실체화한 오디션 ‘No No Girls’ 속 심사위원까지.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고 걸그룹 하나(HANA)를 탄생시킨 주동자를 도맡으며, 다시금 ‘책임감’이라는 주제의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챤미나. 개인의 생각과 철학을 음악에 태워 사회에 흘려보내며 개척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사이 그는 어느덧 햇수로 9년 차 아티스트가 되었다. 9월 18일 진행 예정인 챤미나의 기념비적인 내한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가 품고 있는 내적 풍경과 지금의 마음가짐에 대해 귀를 가까이 기울여봤다.
지난 1~2년은 챤미나 씨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기였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No No Girls’ 프로듀싱 참여, 투어와 신곡 발표에 다양한 무대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오셨습니다.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보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나 감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챤미나: 가장 크게 느낀 감정과 변화는 역시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난 일 그리고 HANA가 데뷔하면서 지켜야 할 존재들이 한꺼번에 생긴 점이에요. 그로 인해 더 큰 책임감이 생겼고, 그 책임감이 저에게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최근 일본 투어 ‘AREA OF DIAMOND3’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무대에서 시도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졌을 것 같고, ‘No No Girls’를 통해 본인의 무대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투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셨는지 그리고 무대 연출 등에서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챤미나: 이번 투어에는 ‘루비’라는 주제로 ‘승리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저에게 ‘승리’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승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난 1~2년은 저 자신을 이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루비’라는 주제를 내걸고 이번 투어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승리의 길’이라고 들으면 빛나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고통스러운 순간도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 반전적인 면을 담아내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화려하고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춰 연출했어요. 지금까지 진행한 투어 중에서도 가장 밝은 무대였던 것 같아요.
챤미나 씨의 무대는 댄서나 밴드 세션과의 컬래버레이션 수준을 넘어서, 콘셉트와 연출이 강렬한 일종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AREA OF DIAMOND’에서 보여준 ‘BIJIN’ 무대에서는 메이크업을 지우는 연출을 통해 곡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고, 공중에서 등장하거나 의자를 활용한 안무와 러닝머신을 이용한 연출이 돋보였던 ‘뮤직 어워즈 재팬’ 무대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단독 공연을 비롯한 여러 무대를 만들 때 기획과 아이디어는 주로 직접 챤미나 씨가 제안하는 편인지 그리고 연출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도 궁금합니다.
챤미나: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고, ‘이렇게 하면 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겠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곡의 메시지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편이에요. 계속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어? 이거 괜찮은데?’ 하고 떠오르는 느낌이랄까요. 퍼포먼스를 통해 곡의 메시지가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그 부분이 제가 가장 신경 쓰는 지점 중 하나예요.
챤미나 씨는 데뷔 초기부터 이미 단순한 ‘래퍼’나 ‘힙합 아티스트’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였어요. 특히 최근 2년간 발표하신 싱글들은 장르나 방향성 면에서도 매우 다채롭게 느껴지는데요. 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나 접근 방식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챤미나: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제 기량을 갈고 닦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을 좋아해온 만큼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 늘었던 것도 같고요. 그리고 제가 만든 레이블 ‘NO LABEL MUSIC’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 자체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제 인생을 표현해 나가고자 하기 때문에 특정 장르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지만, 모든 장르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WORK HARD’는 챤미나 씨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드물게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타이트한 리듬 위에 빠르게 전개되는 랩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고요. 평소에 곡 아이디어를 미리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트랙을 선택해 작업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곡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미리 구상해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결과물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평소 작업할 때 특정 장르를 정해놓기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편인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챤미나: 저는 평소에도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시도해보려는 편이에요. ‘WORK HARD’는 채찍질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작업한 곡이에요. 평소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다가 작업실에 들어가면, 아이디어가 ‘뻥’ 하고 떠오르는 편인 것 같아요.
현재 한국과 일본, 두 문화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인 면에서도 챤미나 씨는 곡마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언어나 정체성 혹은 감정적인 차원에서 두 환경을 오가며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이 챤미나 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담더라도, 언어에 따라 표현 방식이나 감정 전달에 차이가 있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챤미나: 단순히 시도할 수 있는 장르가 많아졌다는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쓰는 편이라, 딱히 정해놓은 건 없어요. 같은 말이라도 언어에 따라 감정의 전달 방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기획사 BMSG와 챤미나 씨의 협업으로 이뤄진 오디션 프로그램 ‘No No Girls’에 참여한 멤버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한국에서도 들려올 정도였는데요. 많은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에 깊이 공감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챤미나: 오디션 내내 저도 물론 진심이었고, 참가해준 친구들 모두가 진심으로 임했던 만큼 그 안엔 어떤 거짓도 없었어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삶이 부딪히는, 어떻게 보면 아주 ‘리얼한’ 순간들이 부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No No Girls’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인위적으로 꾸며지지 않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NO’와 싸워가는 친구들이 경험해온 ‘NO’의 종류가, 어느 정도 우리가 살아오며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상처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이 생겼던 것 같고요. 저를 포함해 제작진도, 참가자들도 모두가 ‘리얼’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No No Girls’는 단순히 데뷔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까지 함께 고민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최종 목표를 데뷔에 두고 있다면, ‘No No Girls’는 음악과 춤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하고, 그것이 세상과 어떻게 공존하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아마도 챤미나 씨의 경험이 어느 정도 투영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챤미나: 누가 어떤 꿈을 꾸더라도, 그 자체로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이 오디션이 꿈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물론 오디션이라는 특성상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 역시 제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준 만큼 저 역시 그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고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제가 손을 내밀기도 해요. 사실 꿈을 키우는 건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잖아요. 그런 친구들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좋은 의미로 디딤돌 삼고, 좋은 의미로 잘 이용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No No Girls’를 통해 데뷔한 HANA의 데뷔 곡 ‘ROSE’는 빌보드 재팬 HOT 10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매우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같은 벌스, 같은 후렴구임에도 멤버마다 완전히 다른 표현을 보여주면서, 팀의 강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곡의 메시지 역시 오디션의 취지를 잘 담아낸 것 같고요. ‘ROSE’를 작업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챤미나: ‘ROSE’는 ‘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곡이에요. HANA 멤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해서 쓰는 곡인 만큼 멤버들 덕분에 제가 사는 반면, 제가 HANA를 살리겠다는 마음. 그 ‘살다’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출산 직후, 정말 많은 고생 끝에 쓴 곡이에요., 제 마음과 메시지를 깊이 이해해준 멤버들의 영혼이 실린 목소리가 정말 큰 역할을 해줬어요. 그만큼 커다란 메시지를 맡길 수 있다고 느끼게 해준 그릇이 HANA 멤버들에게 있었고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곡은 제가 쓰지만 부르는 건 HANA이다 보니 가사에 들어가는 단어나 말투 같은 부분은 잘 확인했던 것 같아요.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다 보면, 정작 진짜 ‘나’의 모습을 돌아볼 틈이 없기도 하고요. 이런 맥락 속에서 사회적 시선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해온 챤미나 씨의 역할과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챤미나 씨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고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방식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오해를 받은 경험도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솔직함을 잃지 않는 이유,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챤미나: 무엇보다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점이에요. 그리고 팬들과 마주하는 순간에는 지금 제 안에 있는 감정과 사랑을 최대한 온전히 전하고 싶어서, 매번 목숨을 걸고 퍼포먼스에 임하는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한국 팬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한국 공연은 약 1년 6개월 만에 개최되는 만큼 챤미나 씨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기대하는 부분이나 각오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챤미나: 항상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테니,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저의 모습을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한국이 제 모국이기도 하고, 제가 태어난 나라이자 애정을 가진 나라다 보니, 한국에서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사랑 그리고 저의 메시지를 잘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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