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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Vogue

빌보드 핫 100은 음악 산업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차트다. 그 최상위권은 당연히 가장 인기 있는 노래의 모음이지만, 때때로 그 목록은 스스로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지난 몇 주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Fate of Ophelia’와 헌트릭스의 ‘Golden’의 1위 경쟁이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에 2025년 핫 100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보인다.

2025년 11월 15일 자 핫 100 차트의 톱 10을 보자.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신 히트작 ‘The Life of a Showgirl’ 수록 곡이 1위와 4위를 차지한다. 저스틴 비버의 ‘DAISIES’(6위)와 모건 월렌의 ‘I Got Better’(9위)도 충성도 높은 스트리밍 기반과 라디오 성적으로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대형 스타의 면모를 보인다. 요즘 성공으로 가는 경로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상단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많은 것을 요구한다. 대형 프로모션을 수반하는 블록버스터 출시, 화려한 피처링과 리믹스, 소셜 미디어와 전통 채널을 아우르는 화제성을 예로 들 수 있다. 차트에 남아 있는 기존 톱 10 히트 곡 중 상당수도 그들의 노래이고, 신예라 할지라도 사브라나 카펜터, 테이트 맥레이와 같이 접근 방식은 비슷하다. 여기에 많이 듣는 노래를 더 많이 듣게 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속성이 결합하면, 결과적으로 상위권은 장기간 정체되고 몇몇 노래가 빠르게 부상했다 쉽게 사라지는 지루한 차트가 된다.

그래서 같은 주간 5위에 오른 올리비아 딘의 ‘Man I Need’가 눈에 띈다. 이 노래가 8월 중순 발매되었을 때 초기 반응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9월 1주 차 차트에 82위로 데뷔하고 매주 조금씩 상승하며 8주 만에 톱 20에 진입했다. 10월부터는 사브리나 카펜터의 투어 오프닝, 방송 노출 등으로 더 많은 청중에게 전달되기 시작했고, 라디오 성적도 빠르게 올랐다. 그 결과, 11월 1주 차 차트에서 스트리밍 1,400만 회, 라디오 청취자 1,700만 수준의 균형 잡힌 성적을 거두며 톱 10에 진입했다. 10월 26일 새 앨범 ‘The Art of Loving’이 공개되면서, 올리비아 딘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고향 영국에서 ‘The Art of Loving’과 ‘Man I Need’는 앨범과 싱글 1위를 석권했다. 영국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는 2021년 아델 이후 처음이다. 심지어 올리비아 딘의 첫 1위 앨범, 첫 1위 싱글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5위 정점에 이른다. ‘Man I Need’는 느리지만 단단하고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리며 ‘높은 데뷔 후 빠른 하락’이라는 흔한 패턴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공급보다 수요가 주도하는 전통적인 ‘슬리퍼 히트’ 모델의 모범 사례라고 하면 어떨까?

이 시각은 노래 한 곡의 히트 때문이 아니다. 올리비아 딘이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장 배경과 철학 그리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이미지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결과다. 올리비아 딘은 로린 힐, 에이미 와인하우스, 캐롤 킹 등 네오-소울, 재즈, 송라이터 계보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취향이자 자신의 계보로 삼는다. 최근 ‘엘르’ 인터뷰는 올리비아 딘의 옷차림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초콜릿 컬러의 스웨터와 까만 바지 그리고 베이지 타탄체크의 벨트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뜻해서, 마치 그의 음악을 의인화한 것 같다고 썼다. 올리비아 딘은 말했다. “나는 항상 스스로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나는 소울 음악을 사랑한다. 재즈도, 보사노바도 사랑한다. 항상 듣는다. 재즈풍의 소울 음악이 멋지니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음악이 좋다.” 데뷔 앨범 ‘Messy’ 시절의 영국 ‘롤링스톤’ 인터뷰는 좀 더 직설적이다. “지나치게 꽉 차 있고, 오토튠되거나, 계산된 음악에 지쳤다. 나는 불완전함이 좋다.” 그는 유행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의 일관성을 택한다는 뜻이다.

‘Man I Need’는 은은한 보사노바 위로 재즈, R&B, 가스펠 같은 전통적 재료를 배합한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디지털 맥시멀리즘 대신 올리비아 딘 자신의 피아노와 함께 절제된 베이스, 퍼커션 그리고 브라스는 여유 공간을 남긴다. 보컬은 담백하고 명료하며, 애드리브보다 이야기를 전달하길 원한다. 가사는 판타지나 극단적 감정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고 당당히 요구하는 건강한 욕구를 유쾌하게 다룬다. ‘The Art of Loving’ 앨범 전체로 보면, 협업이나 피처링이 없는 구성도 특이이다. ‘하퍼스 바자’ 인터뷰 발언을 보자. “그건 의도적이다. 듣는 경험이 친밀한 것이기를 바랐다. 나와 청자 사이의 대화를 상상했고, 다른 목소리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꼈다.” 영국 ‘롤링스톤’이 그를 두고 “진정성이 올리비아 딘 송라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법하다.

요컨대 올리비아 딘은 음악 소비자가 ‘맥시멀리즘’과 ‘알고리즘 친화’를 피로하다고 느낄 때, ‘클래식’하고 ‘유기적’인 음악에게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올리비아 딘은 유일한 예외가 아니다. 앞서 살핀 핫 100의 톱 10으로 돌아가자. 7위 켈라니의 ‘Folded’는 차트 진입 20주 만에 톱 10을 기록했다. ‘Folded’가 14위를 지나 톱 10의 벽을 넘게 한 1등 공신은 ‘오마주 리믹스’ 시리즈였다. 브랜디, 토니 브랙스턴, 마리오 등 1990~2000년대 R&B 거성들이 피처링한 리믹스 6곡은 이 노래가 어떤 취향과 수요에 부응한 것인지 뚜렷하게 드러낸다. 8위 레온 토마스의 ‘Mutt’은 40주 만에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이는 차트 역사상 가장 긴 등반 중 하나다. 2024년 8월 처음 공개된 노래가 올해 2월 100위로 데뷔한 이후 38주 만에 톱 10의 벽을 깼다. 두 노래는 네오-소울 혹은 록과 R&B의 현대적 혼합으로 모습을 달리하지만, 클래식 송라이팅과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때때로 기존 대형 아티스트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에 메울 수 없는 취향의 공백이 생긴다. 그 순간 꾸준히 쌓아온 일관성과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갖춘 아티스트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히트를 기록한다. 지금 핫 100에서는 그것이 1회성이 아니라 일종의 흐름을 형성했다. 올리비아 딘은 그 흐름의 최신 그리고 대표 아티스트다. 이것이 어쩌면 ‘나만의 소중한 아티스트’를 잃어버리는 가장 기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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