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프 안성재 Chef Sung Anh’ (스튜디오 슬램)
김리은: 맛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할 수 있을까?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을 비롯한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 던진 질문이다. 과거 대한민국 유일의 미쉐린 가이드 3스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었던 ‘모수 서울’의 오너 셰프인 안성재의 ‘흑백요리사’ 심사는 마치 이 질문에 대한 답처럼 보였다. 그는 재료의 익힘 정도, 꽃 장식의 필요성, 의도의 전달처럼 명확한 기준으로 취향과 주관의 영역인 맛의 절대적 평가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심사위원이었다. 그러나 ‘셰프 안성재 Chef Sung Anh’(이하 ‘셰프 안성재’)에서의 안성재는 맛의 절대성이 아닌, 상대성에 주목한다. 그는 출연진들이 요리하는 동안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을 존중한다. 감바스를 만드는 동안 다진 마늘을 쓰거나 양파가 너무 많다는 점을 깨달은 수지의 의도를 짚으며 ‘탈락’ 대신 ‘보류’를 주고, 일타 수학 강사 정승제의 레시피를 존중해 생닭 위에 양념을 끼얹거나 재료를 큼지막하게 써는 과정을 그대로 따른다. ‘흑백요리사’ 시즌1에서 밥이 없어 반찬들이 짜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던 출연자 ‘천만백반’의 식당에서는 “주는 대로 먹는 게 엄마 밥상”이라며 음식의 정서적인 결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안성재의 전문성은 음식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저마다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안목이 된다.
취향의 영역인 미각을 절대적으로 만족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성재가 ‘흑백요리사’ 시즌2의 우승자 최강록과의 만남에서 나누는 대화는 불가능을 위해 끝없이 질주하는 정직한 과정이 곧 요리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장사로 요리를 시작했기에 “잘하는 척, 아는 척 그리고 많이 배운 척”을 해야 했다고 털어놓는 최강록에게 안성재 역시 “저도 심사 잘하는 척을 하고 있어요.”라고 답하듯, 여전히 누군가는 정상에서도 스스로를 성찰한다. 아빠로서 지나친 단맛을 우려한 나머지 ‘두바이 쫀득 쿠키’를 ‘두바이 딱딱 강정’으로 만들었다는 구독자들의 반응을 받아들이고 딸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자신이 전문가일지라도 놓친 정서적 허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만약 지니를 만난다면 빌 소원이 있는지를 물었던 수지에게 안성재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과정”이기에 소원이 없다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결국 완벽한 맛이란 순간의 한입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겹겹이 쌓인 패스트리와도 같을 테다. 모든 식탁에서 상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가 끝내 기억되는 맛을 만든다. 어쩌면 식탁에만 한정되지 않을, 삶의 맛이다.

‘시라트’
배동미(‘씨네21’ 기자):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한 무리의 남성들이 육중한 스피커를 나른다. 거기서 테크노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황량했던 사막은 황홀경으로 변한다. 이곳은 모로코 사막 한가운데이며, 무허가로 음악을 크게 들고 춤을 추는 일명 ‘레이브 파티’ 현장이다. 중년 남성 루이스(세르히 로페스)는 어린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과 함께 가출한 딸 마르를 찾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았다. 그는 레이브 파티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소음이라 여기는 인물이지만, 딸이 종종 레이브 파티에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왔다. 부자는 마르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성실하게 돌려보지만 허탕이다. 목격자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그사이 모로코의 군이 파티에 나타나 무허가로 모인 군중을 해산시키고,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다음 레이브 파티가 열리는 모리타니아로 가기 위해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5명의 레이버, 토냉(토닌 한비에르), 자드(제이드 우키드), 비기(리처드 비기 벨러미), 스테피(스테파니아 가다), 조시(조슈아 리암 헨더슨)를 따라나선다. 레이브 파티나 사막 생활에 익숙한 이들과 달리, 루이스 부자는 이런 축제도 낯설고 그들이 탄 차량도 사막을 견디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라디오를 통해 전쟁 소식이 들려와 군의 시선을 피해서 이들이 달리는 길은 점점 험준하고 깎아지른 협곡으로 이어진다.
2025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시라트’를 보면 극한의 정동을 안기는 영화들이 떠오른다.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윌리엄 프리드리킨 감독은 ‘소서러’(1977)에서 폭탄을 실은 트럭이 정글에서 삐걱이는 다리를 건너게 만든 뒤 비바람을 퍼부었고, ‘굿 윌 헌팅’(1997)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게리’(2002)에서 사막을 하염없이 걷는 인간이 겪는 극한의 감각을 스크린에 옮긴 바 있다. ‘시라트’는 두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관객의 신체를 둥둥 울리는 테크노 음악은 언급한 영화와는 다른 뉘앙스의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시라트’는 이색적인 공간에 관객을 데려놓고 들뜨게 한 뒤 이내 불안에 빠지게 했다가 환각에 빠진 듯 몽롱한 순간을 선사한다. 그리곤 절대적 공포에 몰아넣는다. 전자음악 뮤지션인 캉딩 레이 음악감독은 ‘인물들이 길을 간다’는 스토리에 이처럼 독특한 영화적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참고로 영화의 제목인 ‘시라트’는 이슬람교에서 모든 인간이 천국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다리를 일컫는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보다도 날카롭다고 묘사되는 이 다리는 극중 인물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은유한다. 극장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모를까,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 역시 자신만의 ‘시라트’를 건너야 할 것이다. 눈을 떼지 못하고 그 길을 가야 한다.

사카모토 신타로(坂本 慎太郎) - ‘ヤッホー’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유라유라 테이코쿠 시절의 찬사로부터 ‘솔로’라는 자신만의 영역으로 깊숙이 도피한 지도 어느덧 15년. 나른함을 지향하던 스틸 기타의 일렁거림은 시간이 지나며 견고한 ‘팀 뮤직’ 속 시그니처 사운드가 되었고, 인물보다 음악으로 존재하고 싶다며 꺼리던 라이브 역시 어느덧 재개해 대중에 대한 아티스트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사이 스트리밍과 SNS로 국경이 무너졌다. 전 세계로부터의 러브콜은 사카모토 신타로의 예상엔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미국과 멕시코, 더불어 기념비적인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오가며 쌓인 음악적 경험과 관객과의 교감을 토대로, 어느 때보다 친밀히 손을 내미는 그의 다섯 번째 정규작이 3년 반 만에 사람들 앞에 도착해 있다.
전작 ‘物語のように’의 서프뮤직과 로큰롤 기반의 활기와는 또 다르게, 블루스나 가요곡, 재즈와 펑크(Funk) 등을 도입해 의외의 목가적이고 향토적인 무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 무엇보다 특정 레퍼런스의 도입을 통한 변형이라기보단, ‘사카모토 신타로 뮤직’의 팝적 진화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보컬과 코러스의 미묘한 어긋남이 일종의 초대장처럼 느껴지는 ‘あなたの場所はありますか’를 지나, 까랑까랑한 기타 소리와 로우파이의 색소폰 소리의 조화가 일품인 ‘時の向こうで’-부터 본격적인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팔러먼트가 떠오르는 그루비한 인트로를 넘어, 간주의 즉흥성이 이전에 없던 현장감을 발하는 ‘麻痺’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여러 관악 세션과 마림바 등 기본 편성 외의 악기들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선명한 길을 따라 절제된 걸음을 보여주는 사카모토 신타로의 보컬은 음악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인위적인 에너지가 굳이 필요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어찌 보면 시대가 바꿔 놓은 거장의 행보, 그것은 결국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이 어려웠다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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