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오민지, 남선우(‘씨네21’ 기자),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뜬뜬

‘풍향고2’ (유튜브)
오민지: ‘바람 따라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명이 가진 의미처럼 ‘풍향고2’의 지석진, 이상민, 유재석, 양세찬은 바람 따라, 발길 따라, 그리고 때로는 사람 따라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규칙은 예약도, 계획도, 검색도 하지 않을 것.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여행하는 일정이지만, 그 장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제작진이 준비한 가이드북만이 자신들이 가는 곳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고, 종이 지도만이 자신들이 있는 곳과 갈 곳을 알려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날씨 앱도, 택시 예약 앱도 쓸 수 없어 밖에 나가야 추위를 알 수 있고, 잠시 멈춘 택시를 뛰어가 잡아야만 목적지로 갈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모든 호텔 예약이 꽉 차 잘 곳을 찾지 못하고, 슈니첼이 먹고 싶어 오픈런까지 해서 기다렸던 식당에서는 ‘only reservation’이라는 말을 듣고 좌절한다. 눈앞에 멋진 건물이 있어도 그 건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메뉴판을 받아도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없다. 여행 내내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미지의 공간에, 무지의 상태로 놓였을 때의 불안과 위기. ‘풍향고2’의 비합리적인 여행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발 닿는 대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현실적이지도, 계산적이지도 않은 ‘낭만’의 연속이 된다. 미리 예약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한 식당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현지인에게 또 다른 맛집을 추천받고, 지나가던 사람을 따라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을 듣는다. 놀이공원을 떠나기 아쉬워 타게 된 범퍼카는 두 번을 연속으로 탈 만큼 재미있었고, 자리가 없어 생각보다 늦은 시간으로 끊어야 했던 기차표 덕분에 가보고 싶었던 궁전을 방문할 시간도 생긴다. 오스트리아 여행의 마지막 날, 바라본 창밖에는 바라던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유재석이 말한다. “진짜 오스트리아가 우리한테 모든 걸 주는구나.” 누군가의 말처럼 ‘낭만은 비효율에서 온다’면, ‘풍향고2’의 비효율 역시 필연적으로 낭만을 동반한다. 우연히 누린 ‘행운’이 그날의 행복이 되면서.

‘영원’
남선우(‘씨네21’ 기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던 김영민 교수의 말을 넉넉한 시야에서 인용하자면, 연초에도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 이때 말고는 부러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다! 한 해를 하루로 볼 때 오전에 해당하는 지금이야말로 남은 생을 어떻게 비우고 채울지 골몰하는 척 꾸물거리기에 적기다.

2월 4일 개봉작 ‘영원’은 그런 식으로 느긋하게 진지해질 기회를 준다. 등장인물은 모두 죽은 사람, 무대는 사후 세계의 환승장이다. 이제 막 이승을 떠난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은 사별한 첫 남편 루크(칼럼 터너), 65년을 함께한 두 번째 남편 래리(마일즈 텔러) 모두에게 구애를 받는다. 누구와 영생을 살 것인가?

그러나 영화가 두 남자라는 선택지보다 더 공들여 묘사하는 건 그들이 향하게 될 무한의 스펙트럼이다. 매일이 봄인 곳, 여자만 존재하는 곳, 면허 없이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곳 등 각자의 지향과 취향에 따라 머물 수 있는 천국의 보기들이 박람회라는 형식을 갖추고 망자들 앞에 펼쳐지는데, 그 광경이 어린이들의 직업 체험 테마파크인 ‘키자니아’를 연상케 한다. 덕분에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죽어서 가고 싶은 장소는 사실 살아서 도달하고 싶었던 이상이라는 것. 삼각관계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거기에 있다. 2월 13일 이후에는 애플tv+에서 ‘저세상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서비스되니 극장에서 놓쳤다면 참고하시길.

‘Ding!’- 정우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다시 해가 뜬대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잿빛의 ‘클라우드 쿠쿠랜드’에서 잔뜩 웅크렸던 정우가 기지개를 켠다.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붉어진 얼굴을 수없이 두드리며 단단해졌던 ‘철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아득한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신호가 들려온다. ‘클라우드 쿠쿠랜드’에서 호흡을 맞췄던 구름과 함께한 ‘Ding!’을 통해 정우는 칠흑의 진공 속에서 홀로 궤도를 돌며 그려온 삶의 궤적을, 이제 끝없는 고뇌의 우주가 아닌 새파란 천체로 방향을 돌린다.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온 당신에게 이끌려, 거칠게 부딪치며 침묵의 껍질을 뜨겁게 태워버리고자 한다. 자글거리는 기타 톤과 청아한 정우의 목소리가 확신하는 만남의 순간은 적막을 깨뜨리는 환희의 종소리다. 언제나 아쉬운 한 해의 끝자락과 숨 돌릴 틈 없이 찾아오는 새해를 준비하는 가운데 ‘Ding!’이 보내온 신호는 아주 조금의 확신만으로 충분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안도를 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라는 위로가 얼마나 필요했던지. 정우의 노래와 함께 2026년에는 더욱 요란하고 시끄럽게 소리치고, 격렬하게 서로를 안아주기로 다짐했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