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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연,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김복숭(작가)
사진 출처넷플릭스 코리아 X

‘레이디 두아’ (넷플릭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시연: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의 주무대인 삼월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계층 구조를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삼월백화점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머무르는 회장 최채우(배종옥)와, 층과 직군에 따라 서로 ‘급’을 나눠 근무하는 직원들. 고급 유니폼을 착용한 채 우아한 은어를 사용하며 식품관 직원을 무시하는 명품관 역시 백화점의 방침 아래 자유를 통제당한다. 명품관 판매 사원 목가희(신혜선)는 직원용 화장실만 사용해야 한다는 방침 때문에 마감 시간이 되어서야 잠시 자리를 비웠다. 찰나의 순간에 도난 사고가 일어났고, “브랜드에서 발생한 손실은 직원이 직접 메”꿔야 하는 방침에 의해 5,000만 원은 고스란히 목가희의 빚이 되었다. “삼월 가족 여러분”이라는 백화점 안내 방송과 달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침은 목가희를 끝없이 추락시킨다. 훗날 재고 정리 중 실수로 가방을 찢은 목가희는 또 한 번 절망에 빠지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목가희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기폭제가 된다. 그는 백화점에서 훔친 디올 백을 들고 죽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물속에서 ‘디올(DIOR)’이 ‘두아(DOIR)’로 재정렬되는 모습을 보며 명품 백 ‘부두아’의 탄생을 꿈꾸게 된다. 

수년 후, 목가희는 사라 킴(신혜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국 왕실 0.1%에게만 납품한다는 ‘가짜’ 명품 ‘부두아’의 아시아 총괄 지사장이 되어 삼월백화점으로 다시 향했다. ‘부두아’가 파고드는 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싶다는, 혹은 더 상승하고 싶다는 모든 이들의 욕망이다. 자리를 비울 때마다 녹음기를 켜는 최채우의 철저함에도, 사라 킴은 그의 욕망을 건드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혼동시키며 끝내 ‘부두아’의 삼월백화점 입점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거듭난 사라 킴의 인생을 보며 누군가는 또 다시 ‘진짜’가 되기를 꿈꾼다. ‘부두아’를 만들어낸 가죽 가공 전문가 김미정은 자신이 만든 18만 원짜리 가방이 명품으로 거듭나자, 그 영광을 독차지하는 사라 킴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다 결국 그를 사칭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사라 킴이 김미정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박무경(이준혁)은 두 사람 모두 무적자이기에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구조를 마주하고 ‘부두아’의 허상을 폭로하려 한다. 이에 ‘부두아’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사라 킴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김미정이 되어 징역살이를 택한다. 최채우는 백화점의 명성을 위해 증거를 인멸하고, 형사 박무경은 대국민 사기극을 덮은 채 진급을 선택한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진짜’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포기한다. 요컨대 ‘레이디 두아’는 ‘가짜’가 되어야만 ‘진짜’를 지킬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다. ‘부두아’라는 브랜드는 살아남지만, 다섯 개의 이름을 거친 사라 킴 개인의 삶은 결국 지워진다. 그래서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라는 그의 질문은 우리를 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 부르며, 무엇을 기꺼이 외면하는가. ‘진짜’를 쟁취한 끝에 남는 허상을 ‘진짜’라고 할 수 있는가. ‘레이디 두아’는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공범이 되는 사회를 비춘다. 

‘인간선언’ - 크리스탈 티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2020년대 들어 여성 음악가들이 발매한 록 음반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흐름은 전기기타가 톤의 면에서도, 리프의 면에서도 전면적으로 강조되는 경향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시로는 한로로의 첫 발매작들이 있겠지만, 그보단 정우의 ‘클라우드 쿠쿠 랜드’, 김뜻돌의 ‘천사 인터뷰’, 김사월의 ‘디폴트’, ‘NOW’ 등이 이런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음반들을 가득 채우는 것은 고전적이라 할 만한, 두툼하고 찌그러졌으며 무엇보다도 직설적으로 연주되는 전기기타의 소리다. 이 사례들을 주주클럽부터 자우림이나 체리필터를 비롯해 고호경, 리아, 박혜경, 임현정 등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얼터너티브’나 ‘모던’으로 수식됐던 록과 연결 짓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그 대신 이런 맥락에서 크리스탈 티를 이야기하고 싶다. 헤이세이 중반 J-록의 영향을 받아 카랑카랑한 전기기타의 질감이 두드러지는 동시에 발랄한 음색의 보컬 멜로디 또한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의 팝 록은 앞서 논한 두 경향 사이에 적절히 위치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발매작인 ‘핑크 무비’(그리고 감독판)와 ‘하이스쿨 뮤지컬’의 제목과 전체적인 설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크리스탈 티는 음악으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매력적인 허구를 일관되게 구현한다. 곧 록의 측면에서는 사운드를, 팝의 측면에서는 페르소나를 상보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에 능한 팝 록인 셈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착안한 이번 싱글 ‘인간선언’도 마찬가지다. 근작들의 화사한 색채와 대조적으로 검푸른 빛을 띠는 이 곡에서 전기기타는 보다 지글거리는 노이즈를 내도록 조정되었고, 후반의 목소리 역시 그 속에 어느 정도 묻혀가도록 처리되었다. 그러나 ‘인간선언’에서 사뭇 우중충하게 전환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기타와 가창 외의 소리, 이를테면 각 절에서 먹먹하게 깔리는 브레이크비트나 후렴구의 기타 리프 뒷면에서 반짝이는 신스 음, 그리고 배경에 은은하게 드리워지다가 “잠식된 영혼을 다시 붙잡은 채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 종교적인 상황에 알맞게 독주를 시작하는 오르간 소리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후렴은 상대적으로 밝은 색조와 선율을 띠던 기존의 공식과 달리, 곡의 다른 요소가 스며들며 그 일관된 색채에 물들어 간다. 그렇게 시끌벅적해지는 전기기타 사운드와 그에 서서히 파묻히며 흥얼거리는 음성, 멀리서 댕댕 울리는 종소리까지 가세해 고조되는 결말까지. ‘인간선언’은 이번에도 크리스탈 티가 능숙하게 연출한 음향과 그 정서적인 효과를 훌륭하게 들려준다.

‘포스 윙’ - 레베카 야로스
김복숭(작가): 현재 ‘북톡(booktok)’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한 명인 레베카 야로스. 그의 ‘엠피리언 시리즈’ 첫 번째 책 ‘포스 윙’은 독자를 단숨에 나바르 왕국의 한복판으로 끌어당긴다. 전쟁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지도층, 얼마 전 진압된 반란의 흔적이 여전히 왕국 전체를 뒤흔드는 가운데 가족 간의 균열과 긴장 역시 팽팽하다. 이 세계에서는 살인을 정당화하는 데 특별한 이유조차 필요 없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다.

제목의 ‘포스 윙(네 번째 날개)’은 주인공 바이올렛 소른게일이 소속하게 되는 드래곤 라이더 부대의 이름이다. 학자가 되는 삶을 꿈꿨지만, 군사력이 일상을 지배하는 나바르에서 바이올렛은 결국 훈련소로 내몰린다. 바이올렛의 연약한 체격은 약점이지만 드래곤과 연결되는 순간 라이더는 저마다의 마법 능력을 깨운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그 시작부터 특별했다. 두 마리 드래곤과 동시에 유대를 맺은 첫 라이더가 되었으니까. 

저자 야로스의 시리즈는 최근 주목받는 ‘뉴어덜트’ 장르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 대한 첫 이미지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같은 영 어덜트 판타지 픽션일 수 있겠으나, ‘포스 윙’에는 기존 장르보다 훨씬 거칠고 잔혹한 장면도 숨김없이 등장한다. 로맨스 역시 수위가 꽤 높은 편이다. 바이올렛과 프레너미였던 상대 사이에는 단순한 연애 감정보다는 욕망과 긴장이 더 강하게 흐른다. 불안한 동맹 속에서 고조되는 감정선, 대담한 표현, 빠른 전개… 이 모든 요소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곧 그래픽 노블과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니, 이 세계의 확장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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