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8일, 제60회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이 시작된 순간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시청자 눈앞에 푸에르토리코의 사탕수수밭이 떠올랐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고유의 풍경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전통 짚모자 파바(pava)를 쓴 농부들, 도미노 게임을 즐기는 노인들, 대표적인 길거리 디저트 빙수(piragua)를 비롯해 각종 음식을 파는 카트, 그리고 파티가 이어진다. 결혼식으로 대표되고, 졸고 있는 어린아이로 상징되는, 길고도 흥겹지만 가족적인 파티다. 배드 버니, 혹은 공연의 시작에서 선언했듯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는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의 절정에 중남미의 원초적 환희를 거침없이 이식했다. 그의 모든 발언과 노래는 스페인어였고, 자막조차 없었다.
이 무대는 1년 전 켄드릭 라마의 2025년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을 돌이켜보는 것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켄드릭 라마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심지어 화제성 측면에서도 고점에 있었다. 당연히 ‘그 노래’가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그는 동시에 해방 노예가 약속 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은 “40에이커의 땅과 노새(40 acres and a mule)”를 언급하며 역사적 부채를 소환했다. 사무엘 L. 잭슨은 이 무대를 “위대한 미국의 게임(The Great American Game)”이라고 선언했지만, 문제의 게임이 흑인에 대한 구조적 억압을 포함한다고 고발했다. 엔터테인먼트와 역사적 메시지가 결합하고, 그 과정에서 세레나 윌리엄스가 크립 워크를 추던 순간처럼, 그는 사회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더라도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앞세운다.
배드 버니는 켄드릭 라마의 템플릿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미국의 이민자 이슈 때문에 더 눈에 띄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배드 버니는 작년의 분노와 규탄 대신, 동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미학적 선택을 했다. 미국 중심의 주류 팝 시장에서 중남미 문화는 서구의 취향으로 재단되어 이국적인 춤과 노래로 소비되어 왔다. 배드 버니는 익숙한 전형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자연스러운 지역성을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세웠다.
그의 퍼포먼스 전반은 푸에르토리코 전통 가옥을 형상화한 ‘라 카시타(La Casita, 작은 집)’ 세트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배드 버니가 지붕에서 몸을 던져 내려오면, 그 집은 사교 클럽으로 바뀐다. 배드 버니에게 잔을 건네는 사람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50년 넘게 버티며 마지막 푸에르토리코 사교 클럽으로 남은 캐러비안 소셜 클럽(Caribbean Social Club)의 주인 토니타(Toñita)다. 이렇듯 다양한 토착적 요소는 하루의 쇼를 위해 급조된 것이 아니다. 배드 버니는 지난 멧 갈라에서 하이패션으로 승화된 파바를 썼다. ‘라 카시타’는 그의 최근 공연에서 무대장치의 중심이었다. 그의 노래 ‘NUEVAYoL’은 이름처럼 뉴욕에 대한 것이고, 가사에서는 토니타와 그의 클럽에 경의를 표한다.
배드 버니는 그날 공연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외쳤다. “아메리카에 신의 축복을!(God Bless America!)”. 그에게 ‘아메리카’는 단일 국가가 아니다. 배드 버니는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를 시작으로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모국 푸에르토리코를 호명한다. 그리고 공연 도입부에 등장했던 풋볼이 다시 등장하고, 배드 버니는 공에 쓰인 메시지를 정면으로 밝힌다. “우리 모두가 아메리카다.(Together, We Are America.)” 이것은 정치적 도발이 아니라 역사적 바로잡기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의 이름을 따라 등장한 아메리카라는 명칭은 북극권에서부터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에 이르는 대륙 전체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후 ‘아메리카’라는 말은 점차 미국을 가리키는 의미로 좁혀졌고, 중남미는 지리적 위치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라틴 아메리카’로 부르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배드 버니가 주인공인 이유다. 그는 스트리밍 시대를 맞아 라틴계 인구의 지지만으로도 글로벌 톱스타의 지위에 올랐다. 스페인어 앨범으로 첫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1968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호세 펠리시아노(José Feliciano)는 라틴풍으로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부르고 부정적 반응에 부딪혔다. 2013년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마크 앤서니(Marc Anthony)는 MLB 올스타전에서 ‘God Bless America’를 부른 이후 온라인에서 인종차별적 공격을 받았다.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 리키 마틴 등의 라틴계 아티스트에게 영어로 노래하는 것은 과거 음반과 라디오 중심의 시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제니퍼 로페즈와 샤키라는 2020년 슈퍼볼 하프타임쇼 공연을 장식했지만, 영어와 스페인어를 적절히 혼합하는 것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리키 마틴은 하프타임쇼 공연에 등장해 젠트리피케이션을 경계하는 ‘Lo Que Le Pasó a Hawaii’를 불렀다. ‘Livin' la Vida Loca’ 이후 20여 년 만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이날 배드 버니는 앞선 모든 세대를 대표해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다.(Seguimos aquí.)”고 말할 자격이 있었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 소감 당시 “우리는 인간이며, 우리는 아메리카인이다.(We are humans, and we are Americans.)”라고 말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허락을 구하지도, 구부려 맞추지 않는다. 분노하고 혐오하지도 않는다. 공연을 마치며 전광판에 띄운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여정을 요약한다. “증오보다 강력한 것은 사랑이다.(The only thing more powerful than hate is love.)”

하프타임쇼 공연을 총괄하는 제이-지의 락네이션(Roc Nation)은 스타 캐스팅을 통한 시청률 확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를 정의하는 파급력을 목표로 삼았다. “충격을 위한 충격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강력해야 한다.(Not shocking for shock’s sake but culturally powerful.)” 논쟁과 갈등을 감수하는 것과 단순히 화제를 좇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 NFL은 미식축구를 미국 바깥으로 확장하고 싶어 한다. NFL은 매년 중남미와 유럽에서의 정규 시즌 경기를 늘리고 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는 최우선 목표다. 두 나라에는 각각 4,000만 명 이상의 거대한 NFL 팬층이 존재하며, 이는 미국 밖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러한 기획과 계산은 그만한 자격이 있는 아티스트에게 기회를 줄 뿐이지, 그 때문에 문화적 진정성과 폭발력이 퇴색하지 않는다. 공연 직후 월요일, 배드 버니의 음악은 미국에서 일간 스트리밍 9,800만 회를 달성했다. 그의 역대 최다 기록과 거의 같다. 동 기간 성적을 반영한 2월 21일 자 빌보드 핫 100에 배드 버니는 18곡을 올리고, 그중 4곡은 톱 10이며, 대표곡 ‘DtMF’는 1위에 올랐다. 배드 버니가 메인 아티스트로 기록한 첫 1위다. 스페인어 위주로 쓰인 노래 중에서도 2017년 ‘Despacito’ 이후 최초다. 이는 기존 팬의 재청취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그의 메시지는 전달되었고, 알아들을 수 없어도 훌륭한 무대는 사람들을 움직인다. 배드 버니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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