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꾸며진 위로를 건네지 않는 것, 아마자라시가 시간이 갈수록 특별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프런트퍼슨인 아키타 히로무가 15년 넘게 자신의 내면을 겹쳐내 써 내려온 노래들은 섣부르게 고통을 미화하거나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가장 개인적인 단면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다. 그러한 내밀하고도 섬세한 접근을 한결같이 이어온 시간이, 삶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현대인들의 빗장을 풀게 만든 셈이다.
오는 4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창작의 출발점과 라이브에 임하는 태도, 그리고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어느 때보다 진솔한 시선을 건넸다. “지금 제 바람은 오늘 웃을 수 있는 것, 그 정도입니다.”라는 짧은 한마디에, 이 팀을 왜 이 시대의 가장 솔직한 목소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응축되어 있다. 거창한 구원을 약속하는 대신 오늘 하루를 같이 살아낼 것을 공들여 제안하기에 더 오래 남는 음악, 아마자라시는 바로 그런 밴드다.
어느덧 세 번째 한국 공연입니다. 지난 2년간 한국 관객들과 마주했던 경험은 어떤 인상으로 남아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한국에서의 라이브 공연은 이전부터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마찬가지로 ‘과연 우리를 받아들여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막상 공연의 막을 열어보니 매우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낯선 장소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경험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들기 마련인데, 데뷔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런 경험이 신선한 감정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제게는 매우 소중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4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러 차례 한국에서 공연을 경험하신 지금, 이전과는 다른 시선이나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 지점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자라시: 이제 한국 공연도 벌써 세 번째이기 때문에, 관객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려고 합니다.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조심스럽게 접근할 생각은 없습니다. 예전 곡들과 최근 곡들을 모두 포함해 지금의 아마자라시가 어떤 밴드인지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다음 작품의 제작도 시작된 상태이지만, 새로운 아마자라시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아마자라시란 이런 밴드지.’라는 것을 모두 함께 확인하는 라이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가 꾸준히 사랑받으며, 아마자라시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정 타이업이나 계기를 넘어, 노래 자체의 메시지와 정서만으로 이렇게 깊이 받아들여진 사례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반응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또 이 곡이 한국 대중들에게 특히 와닿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그건 나카시마 미카 씨 덕분입니다. 정말 놀랐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아주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만든 노래였고, 나카시마 씨에게 보냈던 몇 곡 중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이 곡은 선택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좋은 곡이라는 자신감만큼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마자라시로 활동하면서 제가 배운 것은, 아주 개인적인 시점도 충분히 보편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많이 팔리는 곡을 만들려고 하면 메시지나 가사는 점점 단순해집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으려고 하죠. 어느 나라의 팝송도 대체로 그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곡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아주 개인적인 사건을, 아주 개인적인 시점으로 묘사합니다. 그럼에도 전해질 사람에게는 분명 전해집니다. 그 이상으로 해석하려는 일은 제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아마자라시의 음악은 무엇보다 ‘언어’와 ‘메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라이브에서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신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음악을 다른 언어권의 관객에게 전달할 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마자라시: 우리는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밴드이지만, 해외에서 공연할 때 언어의 장벽을 그렇게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가사만큼이나 음악 자체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향을 받은 음악의 절반 이상은 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된 것이었고, 사실 의미도 잘 모른 채 들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막은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와 마찬가지로, 좋은 곡을 좋은 연주로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해외 관객들이 아마자라시의 음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직접 보셨을 텐데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음악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 다른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체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의 창작이나 라이브 등 음악 활동에 어떤 변화나 영향을 주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아시아 투어 덕분에 곡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얼마 전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どうなったって’라는 곡입니다. 제게 가장 큰 수확은 역시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감정이 크게 움직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활동 초기에 고향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라이브를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전국에 이렇게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더 크게 확장한 형태로 아시아 투어에서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도 편지를 받곤 하는데, 읽어 보면 대체로 고민의 내용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제게 큰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아마자라시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자라시의 음악은 매우 개인적인 고백에서 출발하면서도,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고 느껴집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을 감춰두지 않고 이를 꺼내놓고 표현하는 지점에서 아마자라시의 세계관이 시작된다는 느낌인데요. 지금의 자신에게 음악을 만든다는 행위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운지, 아니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가까운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지금의 제게 음악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느 정도 포기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대담해졌고, 동시에 둔감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고, 아마자라시로 활동하며 쌓아온 경험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활동 초기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함이 오히려 무기가 될 수도 있고, 그것으로 대역전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스스로 증명해보려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약한 사람을 대표한다.’는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딘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약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 약함을 무기로 삼기에는 너무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인기 아티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지금의 제가 즐기면서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활동 초기의 가설을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곡을 만들 때, 아마자라시의 음악은 ‘문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지 아니면 ‘소리’나 ‘멜로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지 궁금합니다. 또 최근 들어 그 출발점에 변화가 있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곡은 가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다만 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방식도 계속 시도해왔습니다. 멜로디부터 만드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작업 방식은 다양한데 피아노로 곡을 만들기도 하고, DAW(Digital Audio Work station)로 작업하기도 합니다.
경험상 ‘이 노래로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가 분명해진 뒤에 작업을 시작할 때 좋은 곡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멜로디와 가사의 퍼즐을 끝없이 맞춰보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느낌입니다.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를 비롯해 나카시마 미카, 스다 마사키, 리사 등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제공하신 경험도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과거 인터뷰에서 “전문 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은 없다(音楽作家の才能は無い).”라고 말씀하신 바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 없으신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아마자라시의 편곡을 맡고 있는 데와 군(出羽君)이라는 직업 작곡가가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그를 보고 있으면 아티스트와 전문 송라이터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하나의 영화나 드라마 등의 배경음악만으로도 수십 곡, 많게는 백 곡 가까이 만들기도 합니다. 또 편곡을 부탁하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곡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죠. 그들이 단련해온 ‘근육’ 자체가 전혀 다른 종류라고 느낍니다. 물론 작업 요청을 받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겠지만, 전문 송라이터로서의 전문적인 수준을 기대받는다면 아마 그 기대에 완전히 부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자라시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와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시선은 의식적으로 확장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대와 연결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은, 보편성을 지향할 때 대중음악에서 가장 먼저 깎여 나가게 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대나 사회를 의식적으로 음악에 담으려고 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방식으로 보편성을 추구해온 대중음악에 대해 제 안에는 어딘가 작은 안티테제 같은 의식이 늘 희미하게 존재해온 것 같습니다.
요즘은 힙합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사회나 시대를 직접적으로 그린 인기 곡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대나 사회의 색채가 지워진, 이른바 ‘표백된 음악’에 둘러싸여 자라왔기 때문에, 이런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ゴースト’가 발표된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갑니다. 이 작품은 ‘과거의 잘못과 그것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현재’, 그리고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는 개인이 스스로 과거와 마주하고 다시 출발하기보다는, 사회나 타인의 판단에 의해 ‘용서받을 수 있는가?’ 혹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가 결정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앨범을 만들 당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죄의식’이나 ‘용서’,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아마자라시가 활동 영역을 넓혀온 방식은 정공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비겁한 기습과도 같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 가해 의식 같은 것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저는 스스로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마치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인 것 같은 감각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렇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 감정과 아마자라시가 지닌 일종의 가해성이 서로 연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지금의 제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ゴースト(고스트)’의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저는 ‘ゴースト’가 선과 악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선악의 구도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악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사회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와는 별개로, 지금의 제가 과거의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 이후에 사회가 저를 어떻게 평가하든, 적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했던 프로젝트 ‘朗読演奏実験空間 新言語秩序’를 통해 얻은 반성과 경험이 ‘電脳演奏監視空間 ゴースト’에 반영되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당시 느꼈던 한계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거나 확장하려 하셨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자라시: 이건 공연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곡 사이에 들어가는 낭독 파트를 좀 더 짧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또 등장인물을 줄이기 위해 무대를 ‘배’라는 폐쇄된 공간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글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내용이 더 쉽게 전달되도록 전문 각본가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음악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메시지나 서사 부분은 가능한 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의식하며 작업했습니다.
아마자라시의 공연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세계관과 서사가 구현되는 ‘작품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에게 공연은 ‘이미 완성된 작품을 재현하는 장소’에 가까운지, 아니면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가까운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영상과 조명을 포함한 하나의 완성된 작품 속에서, 우리의 연주가 하나의 ‘변수’처럼 긴장 속에서 맞부딪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으면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연주는 의외로 꽤 피지컬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에너지까지 영상(DVD나 유튜브 같은 매체)을 통해서도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은 아티스트와 관객이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활동을 이어오고 라이브 횟수가 늘어가면서, 관객 혹은 리스너와의 관계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제게는 관객이 그 자리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연주의 열기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불안한 마음도 많았지만, 지금은 관객을 신뢰하고 있고 더 이상 불안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건네는 쪽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필사적으로 노래하며 음악 속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순간이라 느낍니다.
‘電脳演奏監視空間 ゴースト’ 공연은 현재 아시아로 확장된 ‘生活の果てに音楽が鳴る’ 투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유지하고자 한 핵심적인 테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동시에 새롭게 변화하거나 확장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마자라시: 처음에는 ‘電脳演奏監視空間 ゴースト’라는 콘셉트 그대로 투어를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그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ゴースト’의 곡들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더 가까운 감정에 닿을 수 있도록 세트리스트를 구성했습니다. 물론 중심에 있는 것은 제 감정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금 아마자라시의 음악은 누군가를 직접 구원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마주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과 같이 불안과 단절이 더욱 깊어진 시대에서, 당신의 음악이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남기를 바라시는지,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희망’의 의미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아마자라시: 그렇게 거창한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지지를 받는다면 그저 기쁠 뿐입니다. 제 노래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처음부터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시작한다면 분명 재미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바람은 오늘 웃을 수 있는 것, 그 정도입니다.
이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기록이 바로 아마자라시가 써 내려온 커리어이자 디스코그래피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계신지, 앞으로 아마자라시의 음악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시는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마자라시: 지금은 제작 기간이라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은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가, 지금의 상황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감정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기만 한다면 음악은 자연스럽게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에서 어떤 감정을 만나게 될지 지금부터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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