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이 익숙했던 소년이, 다 같이 해내는 것의 즐거움을 알기까지.
위버스 라이브에서 주민등록증(이하 ‘민증’)을 신청했다고 했잖아요. 어쩌면 어른에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도 들 것 같아요.
건호: 민증이 발급됐다는 얘기는 들어서 이제 받으러 가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민증이 나오면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 비행기 탈 때 저랑 성현이는 17세 미만이라 항상 따로 줄 서고, 다른 형들은 자동출입국심사를 했는데요. 이제 민증이 생겨 저희도 자동출입국심사를 할 수 있어요.(웃음)
축하드려요.(웃음) 건호 씨가 항상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로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라고 한 만큼, 민증을 진짜로 쓸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즐기고 싶은 일이 있어요?
건호: 아무래도 어른이 되면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간에도 멤버들이랑 다 같이 찜질방이나 PC방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만 가보고 멤버들이랑 함께 못 가봤거든요.
찜질방 너무 좋죠.(웃음)
건호: 저 수영했을 때는 친구들이랑 막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갔다가, 다시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가 또 냉탕에 들어가곤 했거든요. 그때의 마음으로 그걸 다시 해보고 싶어요.(웃음) 왜냐면 이번에 휴가를 받았을 때 수영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멤버들과도 제가 어렸을 때 했던 걸 같이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 당시의 건호와 지금의 건호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건호: 수영 선수였을 때도 무대가 있었고, 관객도 있었지만, 수영은 조금 더 자신과의 싸움에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수영할 때는 수영에만 집중하면 되고, 기록을 몇 초까지 만들겠다 같은 것에만 신경 쓰면 돼요. 그런데 지금, 무대에서는 저 스스로한테 집중하는 걸 넘어 저희를 보는 관객분들, 팬분들과 소통하는 것까지도 생각해야 하죠.
수영할 때는 물에 들어가면 소음도 차단되고, 경기에서도 자신만의 기록을 경신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건호: 맞아요. 그래서 물속에 들어가면 어딘가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이에요. 다이빙할 때는 항상 손끝부터 들어가거든요. 그렇다 보니 손끝부터 발끝까지 물이 닿는 게 느껴져서 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 매력 덕분에 수영을 계속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실 그 매력은 일상생활에서 느끼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잖아요. 수영장이나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고요. 그걸 포기하고 CORTIS를 선택한 만큼, 이 직업이 지닌 그 이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건호: 수영할 때는 제가 해야 할 것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희 팀은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스타일링에도 함께 참여하면서 거의 모든 창작 활동을 다 같이 해요.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과정을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한다는 점이 정말 큰 매력이죠.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CORTIS의 팀 정체성에 대해 “작업할 때 뻔하고 당연한 것보다 항상 새롭게 생각하고 좋은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팀”이라고 이야기했던 게 떠오르기도 해요. 뻔하고 당연한 길이 더 쉽고, 편하잖아요. 그럼에도 늘 새로운 길을 택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때요?
건호: 저희는 일단 놀고 봐요.(웃음) 아이데이션 회의를 할 때도 남들이 보기에는 미팅에 집중도 안 하고 장난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좋은 아이디어는 항상 그렇게 나왔어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거나 장난치면서 놀다가 아이디어가 시작됐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가장 좋았어요. 친구들과 얘기할 때 다 내려놓고 필터링 없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작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요?
건호: 이번 작업할 때 다 같이 ‘이런 일도 있었고, 또 저런 일도 있었구나.’를 이야기하다가 그게 가사나 뮤직비디오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TNT’ 뮤직비디오의 초기 아이디어는 저희가 데뷔하고 나서 실제로 경험했던 것들이었는데요. 엄청난 인파가 저희를 따라오는 장면은 어딘가를 갈 때마다 사람들이 뒤따라왔던 경험을 모티브로 담아낸 거예요.
아사이도 LA에서 맨날 먹었던 음식인데, 앨범 포토와 동명의 수록 곡 ‘ACAI’에 등장하잖아요.
건호: 사실 ‘ACAI’의 데모 곡은 아사이뿐만 아니라 바나나랑 딸기 이야기까지 섞인 프리스타일에서 시작됐어요. 그런데 프로듀서님들이 듣고 ‘이거 무슨 얘기예요?’라고 물어보셔서 저희 요즘 아사이볼 많이 먹는다고 했더니 그럼 그냥 그걸로 제대로 곡 써보면 어떠냐고 하셔서 ‘ACAI’를 쓰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어떤 내용을 쓰지?’ 했다가 ‘좋아하니까 좋아한다 말하자.’는 얘기가 나와 성현이가 “내가 많이 좋아해, uh uh 아사이”라는 가사를 썼고요. 그리고 ‘아사이에는 토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베이스가 중요한 거야. 우리도 아사이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어 다같이 “아쉬웠던 taste, 걷어 근본 없는 토핑” 가사를 썼어요.
대상이 아사이일 뿐 나름의 로맨틱함과 철학이 담긴 가사네요.(웃음)
건호: 저희가 자주 시켜 먹는 아사이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만 계속 먹다가 ‘이제 다른 곳도 시도해보자!’ 해서 다른 가게에서 시켜 먹어봤는데 베이스가 엄청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우리는 이 가게가 제일 맞는 것 같다. 여기 아사이가 제일 맛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첫 번째 벌스의 라임을 이야기하다가 그 토핑 얘기가 나와 처음에 “걷어 근본 없는 토핑”이라는 라인이 딱 나왔어요. 그러고 나서 ‘아사이는 토핑이 아니라 베이스가 주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로 풀자고 생각해서 다음 가사들을 쓴 거예요.
‘ACAI’의 건호 씨 파트에서 “Uh uh uh uh uh hundred 아사이”나 “두 잔 먹고 흥이 올라, 흔들면 다 samba지” 부분은 어깨춤을 추거나 팔을 휘젓는 등 자유로운 움직임이 두드러지잖아요. 멤버들이 각기 다른 스타일로 같은 안무를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건호: 저희 춤은 프리 구간이 많아요. 마음대로 자신의 스타일로 춤을 추면서 바이브만 맞추는 거죠. 춤을 출 때도 각자 추구하는 멋이 다르고, 저희가 쓴 곡을 저희가 표현하는 거라 곡의 바이브를 살리는 게 더 쉽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출 때 다양하면서도 ‘맛있는’ 느낌이 나요.
건호 씨가 추구하는 멋이나 건호 씨만의 바이브는 어떤 건가요?
건호: ‘REDRED’에서 마틴 형이 끝나고 나오는 제 파트가 제일 제 바이브가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춤도 약간은 장난스럽고, 진지하지만은 않아서 좋아요. 저는 진지한 것보다는 약간은 정신 나간 듯한 바이브를 조금 더 잘하는 것 같거든요.(웃음)
그럼 반대로 다 함께 맞춘 CORTIS의 멋은 어떤걸까요?
건호: 저희 멤버들도, 비주얼브랜딩팀도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게 이번 앨범에서는 저희를 완전 내추럴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어요. 마냥 멋있는 것보다는 저희의 평소 모습, 저희가 원래 가지고 있는 약간은 바보 같은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비주얼적으로도 최대한 겉멋을 없애고 날것으로 보일 수 있도록 옷도 일부러 멋있는 부츠컷 청바지보다 빈티지 숍에서 2만 원에 살 수 있는 나이키 바지, 아디다스 트랙팬츠 밑단과 양말 같은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을 했어요. 스타일링뿐 아니라 메이크업에서도 사실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거의 생얼로 찍고, 피붓결이나 눈썹, 속눈썹이 카메라에 완전 잘 담기게 찍으려 하기도 했어요.
건호 씨의 셀카처럼요? 카메라를 엄청 가까이에서 대고 찍거나 사진이 흔들린 것들도 많고, 음식을 먹여주는 듯한 구도도 많더라고요.
건호: 사실 잘생긴 셀카만 올리는 게 약간 부끄러워 그냥 찍는 대로 올려버려요. 그리고 팬분들이 그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요.(웃음)
평소의 건호 씨는 어떤 모습이에요?
건호: 저 평소에 모자 쓰는 것을 엄청 좋아해요. 그냥 머리에 얹어 쓸 때도 있고, 옆으로 돌려 쓸 때도 있고. 그리고 요즘은 밴드 티셔츠나 천쪼가리 같은 옷 입는 것도 좋아하고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미국 갔다가 엄청 싸게 산 옷이거든요. 이 재킷은 원래 가죽 재킷인데 다 망가졌어요. 그런데 그걸 대충 걸치고 다니는 게 또 분위기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에는 골반 밑으로 내려오는 길이가 긴 재킷을 많이 샀어요.
왜요?
건호: 리암 갤러거 스타일을 따라 입어본 건데, 최근 밴드 오아시스에 엄청 빠져서 음악도 듣고, 미국에서 LP도 사오고, 다큐멘터리도 봤거든요. 다큐멘터리는 사람의 삶을 담다 보니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이잖아요. 거기에서 리암 갤러거가 청바지에 바람막이만 입고 나오는데 그런 멋을 많이 부리지 않은 듯한 스타일링이 너무 매력 있더라고요. 그 분이 입는 옷을 보면서 길이가 긴 재킷처럼 이전에는 시도하기 어려워했던 스타일링을 따라 해봤어요. 그래서인지 확실히 지금은 더욱 더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고, 시야도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이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5년 후, 10년 후에 본인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지금의 건호 씨는 5년, 10년 후가 아니라 당장의 5개월 후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도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건호: 최근에 로망이 생겼는데요. 현재도 멤버들하고 같이 살지만 지금은 조금 더 숙소 생활에 더 가깝잖아요. 그래서 10년 후나 더 컸을 때는 멤버 누군가의 집에서 다 같이 살고 싶어요. 훨씬 더 나중에는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혼자 살아보고 싶기도 해요. 뉴질랜드에서 ‘FaSHioN’ 촬영했을 때 강이 설산과 같이 뻗어 있는 풍경이 너무 인상 깊어 나중에 그런 곳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지금도 숙소에서 지내지만 나중에도 다 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숙소 생활이 재밌나 봐요.(웃음)
건호: 저희 방은 세 명(마틴, 성현, 건호)이 지내고 있는데 다 같이 밤에 얘기할 때도 많고, 가끔은 갑자기 흥이 올라 시끄럽게 장난칠 때도 있어요. 반면, 제임스 형이랑 주훈이 형 방은 퇴근하면 일단 분위기가 차분해져요. 퇴근하면 제임스 형은 혼자 방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혼자 뭐 시켜 먹거나 하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주훈이 형은 바로 씻고 잘 때가 많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서로 잘 맞을 줄 몰랐는데 지금 보면 두 방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나뉘더라고요.
마틴 씨는 건호 씨와 비슷한 성향이고, 성현 씨는 어떤 면은 건호 씨와 닮았지만 또 동시에 아주 다르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서로 비슷한 혹은 아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며 맞춰 가는 과정은 어땠어요?
건호: 원래 저랑 성현이는 어느 정도 깔끔함을 추구했거든요? 그런데 마틴 형이 바지를 벗어서 대충 두는 스타일이라 서로 “이거 왜 안 치워?”, “좀 깔끔하게 살아!” 이러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세 명 모두 점점 깔끔함에서 약간 멀어졌어요.(웃음) 그래도 이틀 전에는 화장실을 한 번 싹 치웠어요.
화장실 청소를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건호: 아무래도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다 보면 반복되는 루틴은 오히려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숙소 인테리어를 다시 한 것처럼 새로운 환경을 계속 만들거나, 새로운 루틴을 만들거나 하면서 시야를 넓혀가야 해요.
청소도 음악이랑 관련 있다니 역시 ‘영크크’네요.(웃음)
건호: 사실은 화장실에 안 쓰는 용품들이 너무 많아 언제가 이걸 꼭 치워야겠다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이틀 전에 싹 다 치운 거예요.(웃음) 숙소 인테리어랑 환경을 조금씩 바꾸고 있거든요. 최근에는 거실에 플레이스테이션도 생기고, 카펫도 생기고, 테이블도 생기고, 조명도 놓고, 화장실도 이래저래 싹 치웠어요. 하나씩 바꾸다 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마틴 형이 캔들을 사 와서 그걸 피워 지금은 좋은 향기도 나요. 다 하고 보니 숙소에 온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온기가 생기니 조금은 더 잘 잤어요?
건호: 아직 똑같아요. 가위도 눌리고, 꿈도 많이 꿔서 가끔은 메모도 해놔요. 언젠가 꿈에서 떨어지다가 눈을 떴는데, 그냥 눈만 뜬 게 아니라 진짜 꿈에서 떨어지던 그 자세 그대로 깬 거예요. 누워 있는데 그런 자세로 깬 게 너무 신기해 안 잊혀져요.(웃음)
건호 씨가 평소 잠을 잘 못 자다 보니 매일 남들보다 조금 더 긴 하루를 살게 되잖아요. ‘Wassup’에서 건호 씨 파트가 “오늘도 하루는 길었어”, “반복되는 삶에 지쳐도 yeah we gotta go”인데,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마침내 도달한, 그곳은 어디일까요?
건호: 무대요. 연습할 땐 반복이 중요하다 보니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마침내 무대 위에 서면, 조명에 비친 관객분들의 불빛이 보이거든요.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 어딘가가 울려요.
- 건호 “제가 지금까지 찾아왔던 건, 무대예요”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