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토마토맛, 시부야계의 ‘기억’을 복각하다
2000년대의 기억으로 빚은 2026년의 카운터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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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VISLA Magazine

처음 본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팀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 아직 마땅치가 않다. Y2K를 지향하는 레트로한 음악, 낮은 해상도 속 닌텐도 3DS와 싸이월드가 뒤엉켜 있는 뮤직비디오, '걸그룹'이라는 호칭과 거리를 두면서도 콘셉추얼한 의상을 입고 정해진 안무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인디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와중에 실재와 가상의 노스탤지어를 가로지르는 대표 곡 ‘콜렉트콜 개러지’는 조회 수 37만 회를 훌쩍 넘겼다. 데뷔한 지 1년 조금 더 된 인디 밴드에게는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숫자다. 이처럼 아는 맛 속 미묘한 언밸런스함은, 채소임에도 자주 과일로 오해받는 ‘토마토’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어디서 이렇게 정체 모를 그룹이 갑자기 뚝 떨어졌나 싶을 테지만, 세 멤버 모두 뮤지션으로서의 명함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품고 살아왔다. 수은과 쿠인은 7~8년 차 솔로 싱어송라이터이며, 나연 또한 베이시스트로 여러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해왔다. 그러던 이들이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발굴한 소재가, 바로 자신들의 근간을 관통하는 ‘시부야계’였던 것.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음악적 재현이 아닌, 해당 사조가 한국에서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의 정취를 되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데뷔 곡 ‘토마노바’에서 브라질리언 재즈나 보사노바를 라운지 뮤직으로 재가공했던 몬도 그로소나 F.P.M(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은 도리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싸이월드 맛’을 재구성하는 한국식 시부야계
시부야계에 대한 음악적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공통의 사운드로 묶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칭의 기원은 HMV 시부야의 바이어였던 오오타 히로시가 만든 시부야 레커멘데이션(SHIBUYA RECOMMENDATION)이라는 추천 매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에 미발매된 남미·유럽 음원이 흘러드는 유통 환경 속에서 ‘이국적이고도 키치한 팝’에 영향을 받은 로컬 아티스트를 선별해 진열하던 코너다. 플리퍼즈 기타나 피치카토 파이브, 오리지널 러브 등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컷 앤 페이스트’의 장인들 역시 이 코너를 통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소신 발언 하나. 토마토맛이 시부야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이들이 참조하는 것은 정석의 계보가 아닌, ‘한국의 시부야계’다. 활시위는 정확히 2003~4년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을 노리고 있다. 하바드, 프리템포, 다이시 댄스, 파리스 매치 등이 한데 묶인 ‘재즈·라운지풍 일본 음악”의 무드 전반을 가리키는 총칭과도 같다. 즉, 이들이 지향하는 ‘시부야계’는 실재하는 무엇이라기보다, 현 시대에 재소환하고픈 기억 속 이미지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EP ‘토마토맛 도시락’은 이를 증명할 실마리다. 앞서 언급한 ‘토마노바’를 필두로, ‘머쉬룸 하우스’에는 나카타 야스타카가 퍼퓸의 ‘ポリリズム(폴리리듬)’에서 완성한 테크노팝의 문법과 국내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정서가 뒤섞여 있으며, ‘레몬 앤 샤베트’의 하와이안 무드는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콜렉트콜 개러지’는 말 그대로 프리템포와 다이시 댄스로 대표되는 네오 시부야계의 한국식 정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지점은 바로 ‘오렌지 런웨이’다. 미샤나 우타다 히카루가 구사했던 1990년대 일본 R&B를 차치하더라도, H.O.T.의 ‘Go! H.O.T.!’와 S.E.S.의 ‘I’m Your Girl’이 단박에 떠오르는 곡조는 국외 레퍼런스를 헤아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정통성을 추종했다면 결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었을 선택지다. 그룹이 ‘시부야계’를 ‘음악’이 아닌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과 ‘태도’의 영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만하다.

음악부터 비주얼까지, DIY로 완성한 ‘토마토맛’
그럼에도 오리지널과 그대로 겹쳐지는 지점도 있다. 재킷과 일러스트, 자체 콘텐츠와 프로모션이 연계해 일관된 정서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시부야계 역시 음악에서 나아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행동양식을 구축했던 사조였으며, 다수의 아트워크에 참여했던 신도 미오가 각기 다른 팀들의 개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였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나연은 레코딩과 라이브를 오가는 베이시스트인 동시에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어레인저였고, 수은은 밴드 토스터즈를 통해 인디의 활동 프로세스 전반을 몸소 익혀왔다. 쿠인은 레이블 엉덩이가든의 수장으로 비주얼 디렉터를 담당해온 인물이다. 제작과 실무, 디자인이라는 세 축은 애초에 팀 안에 갖춰져 있었다. 기획사가 외주로 조달하는 기능 대부분을 멤버들이 나눠 쥐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렇기에 이들에게 DIY는 신념이기 이전에 조건이었다.

달걀로 바위를 깰 순 없다, 다만 우리만의 요리를 만들 순 있다
시부야계를 대표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인 카지 히데키는 한 인터뷰에서 “얼마나 남들이 모르는 원전을 찾아내 보여주느냐가 중요했고, 그렇게 만든 곡으로 메인스트림을 뛰어넘어 보겠다는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원류의 승부처는 아무도 모르는 소스였고, 희소성이 곧 자본이었다. 토마토맛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선다. 시간 여행을 겨냥하는 이상, 이들의 과제는 이미 익숙한 소재로 얼마나 흡인력 있는 독자성을 만들어내는가로 옮겨간다.

1990년대 일본의 거리에서 태어난 무브먼트가 메인스트림을 점령해버린 사건을 거대 자본의 메인스트림이 지배하는 2020년대 한국에서 반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이 향한 방향은 자신들만의 작은 우주를 세우는 것이다. 세상을 뒤집지는 못해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즐거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제안이다.

야심의 현실화를 위한 무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K-팝의 홍보 문법이다. 음원과 공연에 큰 비중을 두는 기존 인디 뮤지션과 달리, ‘자컨’을 활발히 만들고 쇼케이스 개념의 ‘토마토맛 도시락 시식회’를 개최한다. 때로는 악기 대신 안무를 앞세우고, 라이브에는 드레스 코드를 제시하기도 한다. 팬과 여러 콘텐츠를 오가며 함께 노는 방식을 설계한다. 최근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도드라지는, 팬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해석을 유도하는 프로모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하나는 리믹스다. EP의 마지막 트랙인 ‘콜렉트콜 개러지 1년 後…’가 예고했듯 이들은 라이브에서 자신의 곡을 다시 비튼다. 인트로를 새로 만드는가 하면 구성을 바꾸고 새로운 비트를 추가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과거의 재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뚜벅뚜벅 현재로 걸어 나온다. 노스탤지어 역시 박제된 것이 아닌, 계속 리뉴얼될 수 있는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억’으로 복각하는 2026년의 ‘토마토맛’
과거를 실제 의미가 아닌 ‘편집된 독자적 이미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뮤지션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얼마 전 본지를 통해 소개했던, 일본을 ‘어린 시절 일상에 스며 있던 식품회사 이름’으로 치환하는 삼형제 밴드 글리코, ‘소울트로닉’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1990년대 R&B 소울과 G-펑크, 앞서 언급한 ‘한국의 시부야계’에 동시에 빚지는 튜이드 등이 좋은 예시다. KiiiKiii의 신곡 ‘Ever2Late!’ 가사에 토마토맛이 참여했다는 사실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위로 또 아래로. 이와 같은 경향은 한국 대중음악계 전체를 순환하는 중이다.

지금 마시는 토마토 주스가 예전에 마셨던 그 맛일 수는 없다. 기억은 언제나 실제보다 조금 더 달거나 조금 더 시다. 토마토맛이 내미는 것은 그 시절의 복원이 아니라, 그 맛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지어 올린 결과물이다. 시티팝을 현 시대로 소환했던,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감각 속 실재했는지 알 수 없는 향수를 가득 담은 베이퍼웨이브처럼 말이다. 그러니 인디 밴드냐 걸그룹이냐는 질문은 애초에 잘못 놓였다. 이들은 큐레이션이 장르를 만들어내는 그 계보의 최신판이고, 그 안에는 원래부터 밴드와 아이돌을 가르는 선 따윈 없었다. 대세를 바꿀 수 없는 시대 속, 이 3인조는 단지 카운터컬처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태를, 플라스틱 캐릭터 도시락통 하나에 담아 내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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