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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작가)
디자인. 전유림
‘시맨틱 에러(Semantic Error)’는 전산학상 논리적 오류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한국에서 이 단어와 가장 친근한 집단은 첫째 개발자, 둘째 BL(Boy’s Love) 독자일 것이다. 컴퓨터공학과 원칙주의자 추상우와 시각디자인학과 인기남 장재영의 캠퍼스 로맨스를 그린 저수리 작가의 ‘시멘틱 에러’는 2018년 리디북스 BL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웹툰과 애니메이션, 오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끈 작품이다. 즉 BL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소비자라면 모를 수 없는 ‘시에러’ 영상화에 성공한 것은 OTT 플랫폼 왓챠다. 지난 2월 16일 공개된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꾸준히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최근 2~3년 사이 몇 편의 BL 웹드라마가 공개된 적은 있지만,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시맨틱 에러’가 처음이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성공의 비결은 원작에 있다. 흔히 BL 속 인물과 관계의 전형성에 관한 농담으로 ‘리디광공(BL 소설이 유통되는 대표적인 플랫폼 리디북스와 BL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거친 남성상을 합쳐 만든 단어)’이라는 표현이 쓰이곤 한다. 그런데 이 경우 두 인물 간의 권력이나 재력은 극단적일 정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드라마로 구현하기에는 여러모로 난해하다. 그러나 ‘시맨틱 에러’의 주인공들은 교양 수업 조별 과제라는 평범하고도 우연한 계기로 엮인 관계다. 장재영(박서함)이 아무리 잘나가는 ‘인싸’여도, 추상우(박재찬)가 지독한 개인주의자 ‘아싸’여도 그들의 격차는 심각하지 않다. 게다가 한국에서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라면 ‘조장’과 ‘무임승차3’의 악연에 치를 떨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은 악연에서 시작해 연인이 되는 것이다. 완벽한 루틴에 따라 생활하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칼같이 차단하던 추상우는 자신의 일상에 자꾸 침투하는 장재영을 ‘버그’로 인식한다. 처음엔 추상우를 괴롭히기 위해 따라다니던 장재영은 ‘입덕 부정기(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는 시기)’를 거쳐 추상우에 대한 감정을 자각한다. 두 사람이 구애와 거부, 갈등, 화해, 연애로 이르는 과정 역시 익숙한 로맨스 서사를 따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신선한 캐릭터는 더 큰 폭발력을 얻는다. 물론, 판타지를 완성하는 것은 캐스팅이다. 김수정 감독은 원작의 적절한 현실감을 바탕으로 청량한 청춘물의 분위기, 미묘한 성적 긴장감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수면 아래 있던 시장을 물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BL은 남성 간의 사랑에 관한 장르인 동시에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장르다. 여성향 콘텐츠 전문 플랫폼 ‘봄툰’의 윤지은 편집장은 “아시아에서 특히 BL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이 받은 성적인 억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실제 여성의 성이 불편한 현실에서 탈주하게 해주는 환상의 출구로서 BL이 존재하는 것”(‘주간경향’)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추상우의 수업 시간표를 알아내 따라다니는 장재영의 행동은 현실 속 여성에게는 공포감을 주는 스토킹이지만, 환상을 기반으로 한 BL 세계관에서는 심리적 안전망을 두고 볼 수 있다. ‘시맨틱 에러’의 여성 캐릭터들이 각자의 매력과 역할을 갖고, 남성 캐릭터들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무해한 존재라는 사실 또한 그러한 맥락 안에 있다.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제이선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가, 감독, 기획 PD, 제작 PD, 제작사 담당 본부장, 왓챠 담당 PD와 마케팅팀 등 제작에 주요하게 참여한 제작진 모두가 여성”이라면서 “BL 장르에 이해도가 높은 제작자이자 소비자였다. 덕분에 여성 시청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잘 알고 만들었다.”(‘쿠키뉴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BL 콘텐츠에 국한된 비결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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