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유력한 힙합 집단을 딱 한 팀만 꼽는다면, 단연 그리젤다 레코즈(Griselda Records)다. 뉴욕 버펄로 출신의 래퍼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이 2012년에 설립한 레이블이다. 웨스트사이드 건을 위시하여 이복형제인 콘웨이 더 머신(Conway the Machine)과 그들의 사촌 베니 더 부처(Benny the Butcher)가 주축을 이루며, 인하우스 프로듀서인 대린저(Daringer), 디트로이트 출신의 볼디 제임스(Boldy James), 여성 래퍼 아르마니 시저(Armani Caesar) 등이 소속되어 있다. 특히 이들은 사업적인 목적 아래 뭉친 레이블 동료 이전에 비슷한 음악관을 공유하는 끈끈한 힙합 공동체나 다름없다. 

 

그리젤다의 존재감이 부각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6년이다. 그동안 많은 믹스테이프(Mixtape)를 통해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쌓아오던 웨스트사이드 건은 그해 드디어 정규 데뷔작 ‘Flygod’을 발표했다. 비록 앨범의 상업적인 결과는 미미했지만, 그의 옹골진 래핑과 탄탄한 완성도의 음악에 미디어와 다른 아티스트의 이목이 집중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바로 이듬해, 그리젤다의 가능성을 알아본 에미넴(Eminem)이 손을 내밀었고, 곧 셰이디 레코즈(Shady Records)와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인디펜던트라는 그리젤다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홍보하고 배포하는 방식에서의 규모는 완전히 다른 단계로 나아갔다.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그리젤다의 폭격이 시작된다. 웨스트사이드 건뿐만 아니라 콘웨이 더 머신과 베니 더 부처 역시 양질의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며 골수 힙합 팬과 평단을 열광하게 했다. 이들의 음악을 장르적으로 정의하자면, 코크 랩(Coke Rap)이다. 갱스터 랩에서 갈라져 나온 코크 랩은 범죄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는 서브 장르다. 오늘날 이 계열의 최고봉으로 일컫는 푸샤 티(Pusha T), 록 마르시아노(Roc Marciano),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등은 범죄 이야기를 영화적인 무드의 프로덕션 안에 담아내며, 장르의 범위를 콘텐츠에서 프로덕션으로까지 확장했다. 

 

그리젤다는 이 같은 흐름을 이어받는 동시에 독자적인 코크 랩 세계관을 구축했다. 일례로 웨스트사이드 건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필자 주: 루이 비통을 이끈 최초의 아프리카계 인물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의 오프화이트(Off-White) 파리 패션쇼에 참석한 후 영감을 얻어 만든 2020년 작 ‘Pray for Paris’에서 험악한 마약 거래의 현장을 런웨이 위로 옮겨온 듯한 음악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베니 더 부처가 각각 2019년과 2021년에 발표한 앨범 ‘The Plugs I Met’ 1, 2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내가 만난 마약상’이란 독특한 콘셉트 아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갱스터 걸작 ‘스카페이스(Scarface1983)를 레퍼런스 삼아 몰입도 높은 코크 랩을 들려줬다. 특히 극적으로 묘사한 마약상 이야기를 메타포 삼아 랩 음악계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구성이 감탄을 자아낸다. 콘웨이 더 머신 역시 ‘From King to a God’, ‘La Maquina’ 등의 앨범을 통해 수준 높은 범죄 랩을 들려주며 그리젤다의 강해진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한몫했다. 

 

무엇보다 이처럼 끝내주는 완성도의 앨범을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어 더욱 놀랍다. 당장 구글에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를 검색해보시라. 2020년부터만 보더라도 경쟁자가 없을 만큼 왕성한 활동량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힙합을 알기 위해 그리젤다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다.


TRIVIA

폴 로젠버그 

최초 그리젤다가 에미넴과 연이 닿은 건 에미넴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폴 로젠버그(Paul Rosenberg)를 통해서였다. 매니지먼트 파트너를 찾던 그리젤다의 음악을 폴이 에미넴에게 들려줬고, 깊은 인상을 받은 에미넴이 정식으로 계약을 요청했다. 당시 그리젤다의 음악을 듣고 에미넴이 했던 말은 이랬다고 한다. “이 친구들을 위해 더 크고 더 나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I want to do something bigger and better for those guys).” -Conway The Machine의 2019년 ‘HipHopDX’ 인터뷰 중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