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사는 전형적인 쌀 재배 지역이다. 쌀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거꾸로 쌀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기는 늘 모자랐다. 대신 70%에 이르는 너른 들과 산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것은 쌀로 만든 밥에 어울리는 반찬이 될 수 있었다. 여러분이 한국의 식탁에서 반찬을 보게 되면, 제발 밥과 함께 먹기 바란다. 그래야 100% 제맛이 나오니까. 반찬은 그렇게 의도된 음식이다. 이런 ‘풀밭’ 반찬은 늘 식탁에 올라오기 때문에 아주 흔하고, 식당에 가서도 공짜이며 언제든 ‘리필’된다. 식당이란 모름지기 고기를 먹기 위해 가는 곳이지, ‘풀’을 먹기 위한 곳은 아니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지배해오고 있다. 그건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 아니, ‘‘풀’을 돈 주고 먹는다고?’ 이런 인식이 있다. 그 때문에 식당은 따로 채식 메뉴를 거의 팔지 않는다.
완전한 베지테리언(비건)은 한국에서 식당에 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자, 밥상에 늘 나오는 김치조차 비건들에게는 금지다. 왜냐고? 김치의 맛을 내는 데 쓰는 젓갈은 새우와 멸치로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음식점은 돼지고기, 닭고기 말고 메뉴를 찾기 어렵다. 중국음식점도 중국인들이 원래 좋아하던 채소 메뉴가 꽤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왜 굳이 풀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가?’ 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목적에 맞게 고기를 중심으로 팔게 되었다.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유명한 짬뽕도 실은 고기로 국물을 낸다. 일식당은 또 어떤가. 한국에서 일식당은 ‘회’를 먹으러 가는 곳이므로 채소 요리가 없다. 이런 식이다. 베지테리언 메뉴에 대해 예민한 곳이 양식당이다. 하지만 샐러드 말고는 양식당이 베지테리언 전용 메뉴를 갖춘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는 이탈리안 음식 셰프이기도 한데, 베지테리언 메뉴를 개발해서 준비하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식당(이탈리안을 포함하여)은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으러 가는 곳인 까닭이다. 내 식당에 오는 비건들은 샐러드와 메뉴에도 없는 알리오올리오를 주문한다. 채소와 곡물로 만든 맛있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얼마든지 있지만 갑자기 만들 수는 없는 까닭이다.
놀랍게도 이런 경향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비건(을 포함한 베지테리언)들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실, 밥집이라고 부르는 한식당에 가면 완전한 채식도 꽤 많다. 쌈에 된장을 발라 먹거나 콩나물, 참나물 같은 온갖 나물류 반찬은 여지없이 100% 비건용이 될 수 있다. 잡채가 있다면 고기를 빼고 시켜도 된다. 원래 완벽한 채식이었던 된장찌개는 멸치와 고기 세례를 받아 아주 감칠맛이 강하게 변했지만, 그래도 “고기 빼고 끓여주세요!”라고 주문해볼 수 있는 멋진 요리다. 게다가 한국은 원래 매우 엄격한 베지테리언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바로 사찰 음식이라고 부르는, 절에서 도를 닦는 승려들이 바로 전형적인 완벽한 베지테리언들이다. 베지테리언 메뉴는 사찰 음식에서 매우 강력하게 보존되고, 발전되었다. 이른바 ‘절밥’은 건강하고 선(禪)의 기운을 뿜는 음식을 찾는 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 이 절밥을 파는 식당이 서울 한복판에서 운영하면서 미쉐린 별을 몇 해 동안 받기도 했다. 절밥은 소박한 것도 있지만 의외로 정교하고 복잡한 것이 많다. 고기와 생선 같은 치트키를 쓸 수 없으므로 감칠맛이 적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기 위한 온갖 노력과 고려가 더해진다. 태양에 말리고, 절이고, 튀기거나 굽고 하는 기술을 이중 삼중 복합적으로 쓸 때도 많다. “이게 고기 없이 만든 음식이야?” 하고 놀라 정도로 입에 착착 붙는다.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당신이 해물도 먹는 베지테리언이라면 한국은 별천지다. 한국인은 해물을 워낙 좋아하며, 엄청나게 먹어치운다. 하루 세 끼를 우리의 취향에 맞춰 식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고기반찬이 많아졌지만, 거리의 흔한 한식당은 고기 구이 전문집을 빼고, 늘 최고의 생선과 채식 반찬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다. 물론, 김치는 젓갈이 두렵지 않다면 얼마나 끝내주는가. 더 고무적인 것은 한국이 비건에게 아직 친절하지 않지만, 점차 그런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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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나물
한국의 비건 음식은 나물이 핵심이다. 들과 산의 어린 싹, 시금치나 콩나물, 호박 같은 채소를 물에 삶아서 기름과 소금으로 간하는 게 전부다. 물론 약간의 마늘이 들어가기도 한다. 건강에도 좋고, 물론 맛도 좋다. 여러분들이 좋아하거나 알고 있는 비빔밥 고명도 사실은 이 나물들이 맛을 낸다. 나물은 비건들에게 다채로운 보물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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