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0년 10월 25일 작고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미술 컬렉션 기증은 ‘세기의 기증’이라고 불리며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중 대구 미술관에 기증된 작품들로 기획된 ‘웰컴홈 향연전’은 관람객들이 연일 줄을 이으며, 여러 매체를 통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 작품 21점과 기존의 소장품 20여 점이 포함되어 관람객들에게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을 소개한다. 미술관 측은 한국 근현대 미술 작가 이인성, 이쾌대, 서동진, 김종영, 문학진, 변종하, 유영국의 작품이 포함되어 기증작을 통해 한국 미술 전반을 두루 섭렵할 수 있게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중 유영국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공유 되었다. 산의 풍경을 모티브로 한 그의 추상 작품은 자연을 표현한 강렬한 대비와 색면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연 요소를 그대로 모사하지 않고 단순화된 선과 색의 대비, 구성의 밀도를 통하여 화면 안에서 긴장감과 조화를 이루어냈다. 작가의 표현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된 곡선 패턴과 분할된 색면은 화면을 보다 순도 높은 색감으로 보여지게 만들며, 원색과 매개색이 어우러져 있는 표면의 밀도에서 풍성한 빛이 느껴진다.
그러나 유영국의 모든 작품들이 이처럼 환원된 조형 요소로서 자연의 모티브를 가진 화면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도쿄 유학 시절의 유영국은 형태의 절대성과 색의 배제가 중점이 되는 작업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연대에 따라 그의 작품 성향이 변화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초기 작품에서부터 이어지는 일관된 추상 작업과 화면에서 보여지는 분할과 리듬으로 표현되는 질서들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한 특징으로 남는다. 1943년 귀국할 때까지의 유영국은 김환기가 창립 회원으로 있었던 ‘독립미술가협회’, ’자유미술가협회’ 등의 협회전을 통해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하고, 수상하며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보여주었다.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유영국은 귀국 후, 1947년 신사실파 창립에 일조하며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하였다. ‘신사실파’ 활동을 통해 발표된 작업들부터 자연의 형상이 화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고향 풍경에 대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유학 시절의 작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1960년대 이후 산이라는 모티브가 강하게 표현되면서 대표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차가운 절대추상에서 벗어나 따뜻한 서정추상으로 작업이 진행되면서 절대성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질서를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질서와 조형성을 이어나간 것이다.
유영국은 작품에 대해 “구애받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해본 것”이라고 언급했었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한 대상이 아닌, 작가의 주관 속에 속해 있는 자연으로 탐구되어 평면적 화면 안에서 다양한 시공간이 균형 잡힌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완결된다. 평생을 추상과 자연의 조형 연구에 매진한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자연 모티브 추상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작가로 남은 유영국도 1970년대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처음으로 작품을 구매하기 전까지는 판매와 거리가 먼 작가였기에,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이 발전하는 데 미술 컬렉터들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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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미술관
신사실파
1947년에 창립되었으며, 해방 후 등장한 최초의 추상주의 서양화가 단체이다. 신사실파라는 이름은 김환기가 지은 것으로, 새로운 사실을 추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상이더라도 모든 형태는 사실이기에, 새로운 작업 활동의 의지로 결성되었다. 추상작가 유영국, 김환기, 이규상 3인으로 창립된 그룹이었지만, 전시마다 작가 구성에 변화를 주며 넓은 범위의 모더니즘 미술을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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