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투팍(2Pac)은 힙합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존재다. 1996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지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힙합계의 트렌드가 몇 차례나 바뀌었음에도 존재감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생전에 그가 보여준 아티스트로서의 카리스마와 사회운동가로서의 거침없는 행보 그리고 찬란한 음악 커리어 덕분일 것이다. 흥미로운 건 투팍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았거나 아예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세대의 래퍼들이 씬을 가득 채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그가 회자된다는 점이다.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제2의 투팍’ 선언 때문이다.

스타가 된 신진 래퍼들 중 일부는 어느 순간 자신을 투팍에 비견하며 대중과 미디어의 지지를 호소한다. 동세대 다른 래퍼들과의 레벨 차이를 과시하거나 본인의 인정 욕구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투팍의 상징성을 이용한 이들의 결말은 좋지 못하다.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지만, 커리어가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런데 여기 드물게 투팍과의 비교를 감행하고도 살아남은(?) 래퍼가 있다. 바로 폴로 지(Polo G)다.

그는 지난 3월, 투팍처럼 보이는 데님 의상과 반다나를 착용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렇게 글을 달았다.
“그들이 말하길 내가 투팍의 환생이래. 절대 약한 벌스(verse)를 뱉지 않거든(They say I’m ‘Pac rebirthed. Never put out a weak verse).” 떠오르는 스타의 당찬 발언에 미디어와 힙합 커뮤니티는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이후의 양상은 전과 다르게 흘러갔다. 당연히 ‘네가 그 정도는 아니지! 감히 투팍과 비교를 해?!’류의 비판 폭격이 뒤따랐지만, 폴로 지를 지지하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투팍과의 비교는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폴로 지라면 봐줄 수 있어.’다.

이처럼 호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건 폴로 지가 그동안 보인 행보 덕이다. 투팍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심을 표해왔으며, 삶과 음악 면에서 크게 영향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단지 말만 앞세운 것이 아니다. 작년엔 투팍의 대표곡 중 하나인 ‘Changes’를 샘플링하여 재창조한 싱글 ‘Wishing For A Hero’를 통해 전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곡은 폴로 지가 음악적으로 투팍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폴로 지는 작금의 트랩 뮤직, 혹은 드릴 뮤직 래퍼들과 확연하게 다른 랩을 구사한다. 대다수가 돈, 여성 편력, 폭력, 범죄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경도되었을 때 그는 현재 미국 사회와 블랙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분노하고,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정서를 토로하는 데 집중한다. 투팍이 컨셔스 랩과 갱스터 랩의 경계에 서 있었듯이 폴로 지는 컨셔스 랩과 트랩 뮤직의 경계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발표한 새 앨범 ‘Hall of Fame’에는 이 같은 폴로 지의 강점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종차별 아래 공권력이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을 격앙된 무드로 비판하고, 범죄에 노출된 환경 속에서 죽어 나가는 이웃들을 보며 느낀 허망함과 두려움을 감정 풍부한 가사 속에 담아냈다.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투팍과 닮아 있다. 폴로 지는 아직 신예로 분류되지만, 2년 사이에 정규 앨범을 무려 석 장이나 쏟아냈다. 여러모로 폴로 지의 존재감은 나날이 높아지는 중이다. 그가 투팍과의 비교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TRIVIA

반다나

폴로 지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데님 의상과 반다나 패션은 투팍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특히 앞으로 묶은 반다나는 많은 후배 래퍼들이 따라 하기도 했으며, 패션계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