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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찬일(음식 칼럼니스트)
디자인. 전유림

내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중국 식당에 갔을 때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 식당인데도 스파게티를 판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중국식 앙념으로 말이다. 알다시피 중국 국수는 유명하지만 스파게티가 중국 전통 음식은 아니니까. 다른 하나는 스파게티를, 그것도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올려내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요리를 좋아했다. 어차피 중국 식당은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러 가는 곳이니까. 거기서 무엇이 나오든 ‘그들’, 즉 이탈리아인들은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오면 당신은 숟가락을 잘 써야 한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은 한국의 음식 문화를 고려하면서 젓가락을 먼저 배운다. 맞다. 젓가락은 아시아적 도구다. 물론, 사실상 한국만 무거운 금속제 젓가락을 써야 한다는 특이한 점도 있지만, 어쨌든 젓가락만 잘 써도 한국 음식을 멋지게 먹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뜻밖에도 당신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한식은 숟가락이 우선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 ‘수저’라고 부르는데, 곧 숟가락 + 젓가락이란 뜻이다. 숟가락이 앞에 놓인다. 한국의 전통 식사 예절에는 젓가락만으로 밥 먹는 걸 경고하고 있다. 물론 국수는 예외다. 숟가락은 ‘밥’이라는 곡물과 ‘국’으로 이루어진 한식의 기본 구성을 잘 먹을 수 있게 해준다. 한식은 그래서 ‘밥과 국’의 음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근래에 와서 젓가락만으로 식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밥을 적게 먹고, 찰기 있는 밥을 집을 때 젓가락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숟가락은 한국인에게 존경받는다. 상에 식사 도구를 세팅할 때 숟가락이 먼저다. 젓가락은 뒤따라가는 동생이다. 특히나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다. 한국은 오랫동안 비빔밥을 좋아했고, 요즘도 외국에 대표적인 한식으로 광고한다. 식당에서 비빔밥 메뉴를 만나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 설사 메뉴에 없더라도 시킬 수 있다. 종종 한국인은 이렇게 요구하고 식당 ‘이모’들은 기꺼이 응한다. “이모, 비벼 먹게 큰 그릇 하나 주세요!”

 

물론 오케이다. 한국에서는 ‘반찬’이 늘 상에 깔린다. 찌개 건더기와 반찬으로 언제든지 비빔밥을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 게 한국인이다. 이모들은 기분 좋게 참기름과 고추장을 무료로 가져다준다. 비빔밥은 의의로 영역이 아주 넓다. 당신은 혹시 삼겹살을 좋아하는지. 한국의 고깃집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고기 먹고 밥을 볶아준다. 아! 그렇다. 고기 먹고 볶아 먹는 볶음밥은 최고다. 닭볶음탕이나 닭갈비나 곱창전골이나 감자탕도 반드시 볶음밥이 따라온다. 이모가 볶아주는 멋진 장면을 감상하면서 침을 삼키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실은 이것도 비빔밥의 일종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밥을 볶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비는 데 더 가깝다. 한국인은 늘 비빔밥을 먹고 사는 셈이다.

 

비빔밥은 언제 탄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왕의 상에도 올랐고, 민중의 밥상에도 인기가 높았다. 빨리 먹을 수 있고, 격식이 까다로운 다른 한식과 달리 무얼 넣든 자유로운 형식으로 변해왔다. 아마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수백 종이 넘는 비빔밥을 먹어온 것 같다. 한두 가지 반찬-그것은 남은 것일 수도 있고, 비빔밥을 위해 일부러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만큼 비빔밥은 스펙트럼이 큰 음식이다.-을 넣고 원하는 소스를 넣어서 비비면 맛있다. 돌솔비빔밥이라는, 철판 스파게티처럼 묵직하고 도구의 멋이 있는 비빔밥도 있다. 열을 오래 보존하는 돌솥비빔밥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게 된다. 물론 매운 고추장이 듬뿍 들어가서 그렇기도 하다. 이런 비빔밥은 절대로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다. 서양에서 숟가락은 수프용이고, 중국은 밥상에 딸려 나오는 탕을 먹을 때만 쓰며, 일본은 카레라이스 같은 외래 음식용으로만 쓴다. 언제나 밥상에 숟가락이 세팅되는 건 한식밖에 없는 것 같다. 어떤 음식이든 숟가락을 쓰면 더 복합적인 맛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밥과 반찬이 따로따로 입으로 옮겨지지만, 숟가락은 그 소재들을 한꺼번에 입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젓가락은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숟가락은 언제든 당신이 당장 멋지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식 상차림에 펄펄 끓는 뚝배기가 올라올 수 있는 건, 숟가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을 대지 않고 여러분들은 뚝배기를 맛있게 먹는다. 아시아에서 가장 숟가락이 중시되는 나라, 한국의 밥상을 즐겨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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