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은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22일까지 진행된다. 권진규의 회고전 중 최대 규모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를 아우르는 주요 작품 240여 점을 총망라하며 작업 세계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명 ‘노실의 천사’는 권진규의 시 ‘예술적 산보-노실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에서 인용한 것으로,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경지와 순수한 정신성을 나타낸다. 전시장은 권진규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모티브로 구성되어, 보는 이들에게 그의 삶과 작업이 생생하게 체감되는 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며, 밝지 않은 조명 아래의 긴 테이블 위에 무심한 듯 놓인 조각들은, 마치 방금까지 작가가 있던 작업실에 방문하여 구경하고 있는 듯한 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갤러리 전시와 차별점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는 우리가 작품을 보다 더 가까이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에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전시는 권진규의 작업 시기에 따라 입산, 수행, 피안이라는 주제들로 전개되는데, 이는 그가 평생 함께했던 불교적 모티브를 나타냄과 동시에 그의 수행적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섹션 1 입산은 권진규가 본격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고 작업을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시노 미술학교를 수학하고, 권위 있는 공모전이었던 ‘니카전’에서 석조 작품을 통해 특대를 수상하며 큰 성과를 얻게 된다. 이때의 일본에서는 권진규에 대해 고전적 조형에서 진실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하는 태도가 아름다우며 앞으로의 약진을 기대한다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의미 있게 평가하였다. 작업 초기의 권진규는 석조 작품 위주의 작업을 출품했지만, 점차 흙을 굽는 테라코타 기법을 습득하고 충실한 연구를 통하여 그만의 테라코타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의 변화 또한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섹션 2 수행은, 권진규가 한국으로 돌아와 직접 작업실을 짓고 테라코타 위주의 작업을 진행한 시기의 작품들을 다룬다. 우리에게는 여성상으로 익숙한 권진규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들은 여성상, 동물상, 부조, 자소상, 불상, 예수상 등 다양한 이미지들로 제작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우리나라 고대 유물이나 이집트 지역의 유물과 같은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권진규의 관심사와 함께 작품에서의 원시성과 영원성을 추구했던 모습을 느끼게 되는 단서가 된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작품의 제작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당시의 많은 조각들은 브론즈 기법으로 완성되곤 했지만, 권진규는 작품 제작의 마지막 순서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서 완성되는 것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부장품으로 사용되던 테라코타가 1만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마지막 섹션 ‘피안’에서는 건칠 작업과 함께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말년의 작가는 해외 전시, 동상 제작 등이 무산되고, 추상미술이 주류로 자리 잡은 한국 미술계에 좌절하며 52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권진규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은 독창적인 형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에 기반을 둔 입체감과 형태감을 강조한 작품들을 통해, 대상의 재현을 넘어 내면의 정신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 조각 사조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생애와 맞물려 더욱 수행적이고 신화적인 작업으로 느껴지며,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작가의 고뇌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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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ul Museum of Art
TRIVIA
건칠(乾漆)
건칠은 모시나 삼베를 바탕으로 옻칠을 더해 형태를 만드는 기법으로, 병충해나 부식에 강해 식기류나 불상 제작에 주로 사용되었다. 건칠이라는 용어는 근대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며, 방법에 따라 탈건칠, 목심건칠, 목조건칠로 나뉜다. 한국 미술에서 권진규 이전까지는 순수미술 분야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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