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 박수근의 회고전이 오는 3월 1일까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화단에 등장한 박수근은, 1965년까지 활동하며 한국적인 정서와 따뜻함을 담아내는 작품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 대해 한국의 참혹했던 시기를 살았던 박수근의 생애와 자취를 따라가며, 관람자 스스로가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소개한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박수근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전시의 타이틀처럼 박수근의 생애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는 나목과도 같았다. 지금의 유명세와 달리 생전 박수근의 작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일상 속 사람들을 담아낸 그림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여겨졌고, 독학으로 만들어낸 그의 독자성을 받아들이기에는 당시 과도기를 보내고 있던 한국 미술계의 수용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박수근은 평생 동안 자신의 스타일과 소재를 고수하며 작업을 이어 나갔기에 현대에 와서 국민 화가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특징과 매력을 전달해주는 것일까?
박수근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화면에서 보이는 향토적 소재일 것이다. 농가의 풍경, 일하는 여인, 도시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들은 그의 초기작부터 말년까지 일관되게 등장한다. 그것은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터전 그 자체였으며, 당시 한국의 풍경을 가감 없이 표현하여 우리의 마음속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또한 기름기가 제거된 유화물감을 오랜 시간 중첩하여 발라 만든 작품의 표면은 흙벽, 분청사기, 화강암 등을 연상시키며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작가라는 평에 공감하게 된다.
이처럼 배경이 되는 색들을 캔버스 위에 쌓은 뒤, 박수근은 소재가 되는 이미지들을 단순화된 선과 면으로 표현하여 조형적이면서도 평면화된 작품을 완성하였다. 두드러진 질감을 가지면서도 무시되는 원근법은 전통적인 벽화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배경을 생략하여 주제 부분을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절제된 색과 표현으로 모노크롬 회화적인 느낌을 주며, 그 안에서 표현되는 강렬한 형체의 선들은 그가 보여주는 내면적 의지를 담았다고 평가된다. 특히 선들은 말년의 작품에서 더욱 강조되는데, 시력에 문제가 있었던 그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박수근은 왼쪽 눈을 실명한 이후에도 작업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단순화된 선들로 한국의 미감을 담아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앞서 기술한 특징을 가지는 박수근의 작품들과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소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그의 작품 세계가 형성되는 환경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총 4개의 관으로 기획된 전시장은 시간별로 주제를 부각해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아 화가의 길을 꿈꾸게 된 어린 시절부터 미군 부대에서의 전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이웃들의 삶을 그림으로 남긴 일화 등은 전시장 안에서 또 다른 시나리오로 만들어져, 그동안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 박수근의 생애가 세밀하게 전달된다. 그의 대표작은 하나의 작품으로 특정되기 어렵지만, 탄생시킨 작품들마다 고유의 시선과 손길이 담기며 누구에게나 박수근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고유성을 가진다. 이처럼 그가 살아오며 남긴 작품과 자료들을 통해 체감되는 치열한 삶의 작업 활동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기억될 것이다.
TRIVIA
모노크롬 회화
모노크롬 회화란 폴리크롬이라 불리는 다색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한 가지 색이나 비슷한 색조를 사용하여 채도의 변화로 그린 단색화를 의미한다. 1970년대에 등장한 한국의 단색화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내용과 형태를 중시하는 전통적 미술 개념에 반발했다. 색의 물성이 아닌 정신성을 내재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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