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음악은 때때로 아티스트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도구가 된다. 본인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래퍼들의 음악이 특히 그렇다. 아티스트가 리스너에게 귀 기울여주길 바라든 바라지 않든 개성 있고 탄탄한 완성도만 뒷받침된다면, 우린 공감하고 몰입하며 감흥을 느낀다. 여기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신곡 ‘D.M.B.’가 아주 좋은 예다. ‘Babushka Boi’(2019) 이후 약 3년 만에 발표한 새 솔로 싱글에서 라키는 연인이자 슈퍼스타 리아나(Rihanna)를 향해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며 프러포즈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다.
 

올해 초 커플은 둘 사이에 첫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라키는 작년 말경에 벌어진 총격 사건 관련으로 최근 체포됐고, 리아나에게 불충실하다는 루머와도 직면했지만, ‘D.M.B.’를 통해 후자의 논란만큼은 말끔히 지워버렸다.
 

첫 번째 벌스에서 라키는 그들의 시작을 얘기하는 동시에 그가 바라는 여성상에 완벽히 부합하는 리아나를 자랑한다. 이어 두 번째 벌스에서는 아티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성공한 리아나의 10억 달러 지위를 찬양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예의 상스러운 표현도 서슴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리아나에 대한 존중과 그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랩적 허용이다. 1절과 2절이 끝나고 라키의 보컬이 랩에서 노래로 전환되는 후반부에 이르면 가사의 온도도 달라진다. 거친 표현들은 사그라지고 절절함이 느껴질 만큼 낭만적인 동시에 노골적인 구애로 가득 찬다(“내 천사, 내 여신, 내 소울메이트”).  
 

그런데 가장 흥미롭고 논쟁적인 라인이 1절에서 등장한다.
 

“I don't beat my b!*$h, I need my b!*$h / 난 내 여자를 때리지 않아, 내 여자가 필요하니까”
 

그저 당연히 해야 할 맹세를 가사로 옮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더 깊은 의도가 엿보인다. 수년 전 헤어진 리아나의 전 남자친구이자 R&B/힙합 스타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을 우회하여 비판한 것이다. 당시 크리스 브라운은 리아나를 폭행한 사실이 알려져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후로도 인기는 이어갔으나 여성 폭행 이력은 많은 팬이 등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곡에서 크리스 브라운을 특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SNS에서는 많은 이가 정황상 사실로 인정하며 환호하는 중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라인이다.
 

리아나는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여 라키의 청혼에 화답했다. 두 아티스트는 뉴욕을 배경 삼아 서로에게 헌신적인 연인을 연기한다. 이 같은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 Clyde)’류의 커플 이야기를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힙합, R&B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D.M.B.’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편집과 구성 덕에 전혀 다른 차원의 쾌감을 전한다.
 

연무가 낀 듯한 무드의 사이키델릭한 프로덕션도 커다란 흥취를 자아낸다. 데뷔 믹스테이프(Mixtape)였던 ‘Live. Love. ASAP’(2011)과 정규 데뷔작이었던 ‘Long. Live. ASAP’(2013)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비트가 러닝타임 내내 귀와 마음속에서 일렁인다.
 

에이셉 라키는 데뷔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신선한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타가 된 신예 래퍼들 사이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18년에 발표한 앨범 ‘Testing’ 이후 결과물이 뜸했음에도 존재감이 또렷하고 묵직하여 더욱 신기하다. 그가 언제나 트렌드를 좇기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D.M.B.’만 해도 그렇다. 정말로 남다르고 실험적인 청혼가가 아닌가?!

TRIVIA

 

‘D.M.B.’는 ‘DAT$ MAH B!*$H’의 준말이며, 라키는 곡에 대해 ‘빈민가의 사랑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뮤직비디오 연출 또한 라키가 맡았으며, 리아나가 임신 전 작년에 뉴욕에서 촬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