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종종 외양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 이 글을 쓴 나도, 읽는 여러분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최소 한 번쯤은 저지른 일일 것이다. 우린 외모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판단 당하는 삶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같은 문제를 되돌아보고 곱씹어볼 기회는 살면서 얼마든지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특별히 공론화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모를까. 예를 들어 리조(Lizzo)의 신곡 ‘Rumors’와 인스타그램 라이브 영상을 둘러싼 논란처럼 말이다.

 

뮤지션으로서의 번뜩이는 재능과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를 앞세워 성공한 리조에겐 팬 못지않게 헤이터(Hater) 또한 많다. 스타에겐 늘 시기와 질투에 잠식당한 이들이 뒤따르지만, 리조의 헤이터들은 보다 집요하고 잔인해 보인다. 그들은 피부색과 몸매를 끊임없이 헐뜯으며 리조가 무너져내리기만을 바라는 듯하다. 그것이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리조는 8월 13일, 카디 비(Cardi B)를 대동한 새 싱글 ‘Rumors’를 발표했다. 그동안 그를 둘러쌌던 악성 소문과 헤이팅(Hating)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비판하는 곡이다. 뮤직비디오도 동시에 공개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Hercules, 1997)’의 ‘The Gospel Truth’ 시퀀스로부터 영감을 얻어 완성된 작품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뮤즈는 리조를 비롯한 플러스 사이즈 흑인 여성으로 재탄생했고, 게스트 카디 비는 임신한 모습 그대로 출연했다.

 

그런데 이 황금빛 찬란하고 흥겨움 가득한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단 몇 분 만에 댓글은 비만 혐오와 인종차별로 점철된 인터넷 트롤링이 점령했다(현재는 유튜브 측에서 악성 댓글을 삭제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리조의 퍼포먼스와 음악이 백인들의 시선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에 따른 특정 흑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의견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까지 온갖 비난에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해온 리조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인종과 젠더가 다른 내가 이 지점에 관하여 왈가왈부하기엔 매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낙인 찍기만 있을 뿐이다. ‘Rumors’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리조의 모습과 선보인 퍼포먼스가 과연 기존에 플러스 사이즈가 아닌 (성적인 매력을 앞세운) 힙합, R&B 여성 아티스트가 선보인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즉 리조가 마르지 않은 아티스트이기에 스테레오타입 강화를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 ‘Rumors’는 리조의 눈물이 포개어지면서 그저 통쾌한 헤이터 디스 곡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으로 거듭났다. 비만인 혐오, 흑인 여성 혐오, 인종차별 문제를 다시금 중요한 화두로 올려놓았다. (비록, 이번에는 곡의 주인이 아니지만) 카디 비는 작년에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과 함께 부른 ‘WAP’에 이어 또 한 번 중요한 논쟁을 부른 곡의 중심에 섰다.

 

음악의 완성도가 별 볼일 없었다면 의미는 퇴색했을 것이다. 다행히 ‘Rumors’는 끝내준다. 보컬과 함께 단출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 곡은 문을 박차고 나올 준비를 하듯 서서히 시동을 걸던 베이스와 리듬 파트가 부각되면서 모던 펑크(Modern Funk)와 퓨처 펑크(Future Funk)의 경계에 있는 스타일로 변주된다. 리조의 보컬도 자연스레 랩으로 옮겨갔다. 라인 대부분이 재미있고 통쾌하지만, 특히 드레이크(Drake)를 거론하는 부분은 그동안 남성 래퍼들의 가사에 자주 나오던 여성 편력 클리셰를 전복하는 것이어서 짜릿하다.

 

이처럼 온갖 루머를 능청스럽게 늘어놓고 인정하는(?) 랩 벌스가 끝나면, 신스, 일렉트릭 기타, 풍성한 보컬이 한데 어우러져서 분위기를 고조하다가 우렁찬 혼(horn) 세션까지 가세하여 차오른 흥이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열기는 카디 비의 랩을 통해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는 특유의 여유롭고 타이트한 플로우의 랩으로 악성 루머들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리고 마지막 브리지(Bridge)에 이르러 리조가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한 한 방을 날린다. ‘흑인들이 로큰롤을 만들었잖아(Black people made rock and roll)!!!’

 

헤이터들 중 일부는 그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진심 여부를 속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에서 눈물의 진실성을 따지는 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 혐오 및 비하와 인종차별이 명백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어의 눈물 의혹 따윈 집어치워라. 지금이야말로 이 끝내주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때다.


TRIVIA

 

Body positivity

리조는 오래전부터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내세워왔다. 이는 그의 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가 2019년 앨범 ‘Cuz I Love You’를 발표하고 미국 공영 라디오(NPR)에 출연했을 당시의 일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진행자 테리 그로스(Terry Gross)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깨려 했다.”라면서 추켜세우자 리조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응, 그런데 내가 뚱뚱해서 그런 말 하는 거야?(Yeah, but are you only saying that because I’m fat?)”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