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쉴 틈 없는 현대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해볼 만한 전시, ‘나너의 기억’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8월 7일까지 진행된다. 13점의 작품 구성으로 그 숫자만 봤을 때, 대규모 전시는 아니지만 루이즈 부르주아, 앤디 워홀, 아크람 자타리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심도 있는 한국 작가들의 참여로 무게감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잠시 멈춰 세우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고민해볼 수 있는 전시로 소개한다. 그렇기에 작품들은 자신과 타자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그 현상의 주체와 과정들을 고찰해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들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전시 자체가 내포한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삶의 새로운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영상과 설치 형태의 작품들은 큰 카테고리 안에서 3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섹션 1 ‘나너의 기억’에서는 외부 자극으로 형성되는 경험과 정체성 그리고 생물학적 특징에 따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작품 ‘수면’에서는 친구의 자는 모습을 촬영하여 교차 편집한 영상을 통해, 잠을 자는 동안 하루의 기억이 서사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허만 콜겐의 ‘망막’ 또한 우리의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미지들과 레이저 매핑은 빛이 망막의 필터를 거쳐 우리의 기억 체계로 구성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외부의 현상이 사람의 눈이라는 생물의 구조와 결합되는 현상으로 현실과 기억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섹션 2 ‘지금, 여기’는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리로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판화 연작 ‘코바늘’은, 화면에 나타난 붉은 실을 통해 과거에 의해 현재가 만들어지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해준다. 즉 기억에 따른 시간의 연속성을 시각화하며,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는 과거의 기억들이 현대의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를 남긴다. 그뿐만 아니라 아크람 자타리의 영상 작품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편파적 이미지와 일반화된 기억을 경계하며,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올바른 기억 형성에 대해 일깨워준다.
마지막 섹션 3 ‘그때, 그곳’은 미래의 세대가 현재의 우리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그것이 어떠한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담고 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은 온전할 수 없기에, 상상과 자신의 견해가 더해져 새롭게 해석되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이번 섹션의 작가들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들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동시대 이슈를 나타내는 이미지들로, 기억에 대한 심리와 개인의 가치관을 통해 형성되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말한다.
이처럼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주제인 기억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직면하는 현대의 인류는 여전히 시스템적 한계와 오류를 가지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고민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가 올바르게 기억될 수 있을 만한 지점을 사유하게 만든다. 기록은 편집될 수 있고 기억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미래의 우리에게 현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어떠한 삶의 장면을 미래로 이어갈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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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RIVIA
아크람 자타리
레바논 출신의 작가로 시각 아카이브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예술로서의 수집’을 동시대 미술 안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료 사진작가들과 아랍이미지재단을 1997년 설립하고, 과거로부터 온 아카이브를 통해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인식을 가지며 이미지의 공유, 보존, 기억하는 방식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과거의 역사로만 단순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창의적 재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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