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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2000년대 초반 심각한 침체기를 겪은 여성 래퍼의 입지는 현재 크게 달라졌다. 많은 이가 지적하듯이 차별적 시선과 대우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지만, 다시금 여성 래퍼의 수가 늘어났고, 힙합계 전반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는 중이다. 이처럼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매해 새롭게 떠오른 래퍼들도 많아졌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이 즐비하다. 2022년을 맞아 올해 꼭 주목해야 할 각기 다른 스타일의 여성 래퍼 4인을 소개한다.

 

먼저 휴스턴 출신의 켄더맨(KenTheMan)은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를 추구한다. 신예는 아니다. 약 8년 동안 인디펜던트로 활동해오다가 최근에 급부상했다. 과감하고 재치 있는 가사와 타이트한 래핑이 일품이며, 작년에 발표한 EP ‘What’s My Name’이 ‘롤링 스톤(Rolling Stone)’을 비롯한 몇몇 음악 매체에서 호평받았다. 이름과 정체성부터 신선하다. 그는 자신을 "남자의 시선으로" 보는 인생관을 가진 여성이라고 정의한다. 릴 웨인(Lil Wayne)의 독보적인 비유로부터 영향받았고, 향후 팝과 R&B로까지 음악 영역을 확장하려는 포부를 지녔다.

 

리틀록 출신의 캐리 포우(Kari Faux)는 랩을 매개로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그 역시 2012년부터 활동한 베테랑이지만,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건 최근에 와서다. 작년에 발표한 믹스테이프(Mixtape) ‘Lowkey Superstar’가 일부 마니아와 매체의 귀를 제대로 공략했다. 노래와 랩에 전부 능한 포우는 아웃캐스트(Outkast)의 안드레 3000(Andre 3000)를 가장 크게 영향받은 아티스트로 꼽는다. 그의 음악에서 장르의 해체와 결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배경이 설명되는 지점이다. 프로듀서 대니오(Danio)와 함께한 믹스테이프에는 트랩, R&B, 퓨처 펑크 등이 뒤섞여서 황홀한 바이브를 자아낸다. 앞으로 그의 음악이 뻗어나가게 될 방향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빈즈(Beanz)는 비교적 전통적인 힙합 사운드를 추구한다. 그는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힙합 서바이벌 시리즈 ‘리듬 & 플로우(Rhythm & Flow)’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비록 중간에 탈락했지만, 작은 체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옹골진 래핑과 공격적인 가사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로그램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화제를 모았던 참가자 대부분에 대한 관심 또한 옅어졌으나 빈즈는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며 힙합 팬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아픔과 래퍼로서의 자기 과시를 절묘하게 배합한 가사가 그의 또 다른 무기다.

 

끝으로 캐나다 출신의 하비아 마이티(Haviah Mighty)는 이른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을 뱉는다. 차분함과 날카로움을 넘나드는 랩 속에 진중한 주제의 가사가 담긴다. 일례로 그가 2019년에 발표한 ‘Thirteen’은 저 옛날의 노예무역부터 교묘한 감옥 시스템과 오늘날의 트라우마를 노래한 곡이다. 마이티는 조곤조곤한 래핑을 통해 인종차별의 근원을 더듬어 간다. 특히 곡이 수록된 2019년에 발표한 첫 앨범 ‘13th Floor’로 캐나다 최고의 음악 시상식인 폴라리스 뮤직 프라이즈(Polaris Music Prize)에서 수상했다. 이제 캐나다를 벗어나서도 유명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모니 러브(Monie Love), MC 라이트(MC Lyte), 퀸 라티파(Queen Latifah)를 위시하여 다 브랫(Da Brat), 릴 킴(Lil Kim), 이브(Eve)를 지나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카디 비(Cardi B), 메간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 랩소디(Rapsody)에 이르는 동안 여성 힙합 씬에선 몇 번의 우여곡절과 발전이 거듭됐다. 이제 새롭게 떠오른 래퍼들이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다. 오늘날 여성 래퍼의 돋보이는 약진을 확인하고 싶다면, 믿고 들어보시라. 여기 소개한 4인의 래퍼는 결코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TRIVIA

하비아 마이티의 ‘2019 폴라리스 뮤직 프라이즈’ 수상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시상식 역사상 최초로 상을 받은 힙합 아티스트이자 흑인 여성 아티스트였다. 더불어 ‘Thirteen’은 캐나다 내 100명 이상의 음악, 영화 산업 전문가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프리즘 어워드에서 ‘최고의 뮤직비디오’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