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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Fugees가 돌아왔다!
25년 만의 귀환
20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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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다가 해체했거나 활동을 중단했던 그룹의 재결합 소식은 언제나 많은 이를 들뜨게 한다.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팀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푸지스(Fugees) 같은 그룹 얘기다. 1996년 ‘The Score’ 앨범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그들이 다시 뭉쳤다. 2000년대 중반에 공연을 위해 모인 이후, 무려 15년 만이다. 그룹의 역작 ‘The Score’ 발매 25주년을 기념하며 투어를 진행한다. 이는 최근 힙합계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 중 하나다.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 로린 힐(Lauryn Hill), 프라스(Pras Michel)로 구성된 푸지스는 1992년에 정식 결성된 이래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여전히 널리 회자된다. 약 3년 남짓 활동한 그룹이 비슷한 커리어, 더 나아가 훨씬 오랜 커리어를 보유한 여느 아티스트들보다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규 2집 ‘The Score’의 여파가 대단했다. 괜찮은 랩과 프로덕션이었지만, 차별화가 덜했던 첫 앨범 ‘Blunted On Reality’(1994)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The Score’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음악이 담겼다. 샘플링을 통한 네 마디 루프(loop) 중심의 전통적인 힙합 프로덕션을 근간으로 하되 R&B/소울, 레게, 포크, 록 등이 결합된,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방식의 조합이었다.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만 봐도 그렇다. ‘Fu-Gee-La’, ‘Killing Me Softly’, ‘Ready or Not’, 이 세 곡은 각각 자양분 삼은 장르와 퓨전 방식이 판이하다.
램지 루이스(Ramsey Lewis)의 ‘If Loving You Is Wrong I Don't Want To Be Right’에서 애수 어린 키보드 라인을 가져와 투박한 드럼 사이에 포갠 다음, 티나 마리(Teena Marie)의 청량한 보컬(‘Ooo La La La’)을 로린 힐의 진득한 소울 보컬로 바꿔 놓은 ‘Fu-Gee-La’가 보편적인 힙합 음악에 가깝다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Bonita Applebum’을 샘플링한 비트 위로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동명 곡을 거의 그대로 커버한 ‘Killing Me Softly’는 이때까지 또렷하던 R&B와 힙합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델포닉스(The Delfonics)의 ‘Ready or Not Here I Come’와 엔야(Enya)의 ‘Boadicea’ 음악을 조합한 ‘Ready or Not’은 힙합, R&B, 뉴에이지의 황홀한 혼합물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푸지스의 음악은 갱스터 랩 일색이던 메인스트림 차트에서 대성공을 이뤘다. 더불어 오늘날 얼터너티브 힙합, 혹은 프로그레시브 힙합의 효시로 평가된다.
둘째, 그룹의 생명은 짧았지만, 이후 세 아티스트의 솔로 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와이클레프 장의 ‘The Carnival’(1997), 로린 힐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1998), 프라스의 ‘Ghetto Supastar’(1998), 멤버들의 첫 솔로 앨범이 전부 성공했다. 특히 로린 힐의 앨범은 ‘The Score’보다도 거센 물결을 일으켰다. 지난 2월에 기고한 ‘로린 힐, 다이아몬드를 쥐다’에서 얘기했듯이 힙합의 범주를 재정의한 작품이었다.
푸지스의 재결합에 이토록 열광하는 건 그저 옛 추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현재에도 흥분을 안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란 바람과 믿음도 바탕일 것이다. 어쩌면 십수 년간 희망과 포기를 반복하며 기다려온 로린 힐의 새 앨범을 향한 열망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2006년에 그랬던 것처럼 푸지스는 앨범에 대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시 각자의 길을 갈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또 한 번 실망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 무대에서 세 아티스트가 함께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The Score’ 속 명곡들을 라이브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TRIVIA
The Score
앨범 발매 25주년을 맞이한 ‘The Score’가 남긴 기록은 화려하다. 미국에서만 700만 장 이상 판매됐으며, 석 장의 싱글도 각각 1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많은 매체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것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 부문 후보, ‘Best Rap Album’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수많은 음악 매체에서 ‘최고의 랩/힙합 앨범’, ‘20세기의 중요한 대중음악 앨범’ 리스트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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