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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그래미 어워드에서 제일 흥미로운 후보 리스트가 어느 부문인지 아는가? R&B/소울이다. 종종 다른 장르보다 허를 세게 찌르는 후보가 배출된다. 음악적으로 훌륭함에도 후보에 포함되지 못한 사례는 어느 장르에나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리스트가 발표될 때마다 “이 앨범이 후보가 아니라고?!” 내지는 “이 곡이 후보라고?!”라며 흥분하는 건 나도 매번 즐겨 하는(?) 짓이다. 그러나 장르 팬들 사이에서조차 생소하거나 시장에서의 반응이 저조했던 아티스트/작품이 포함되는 경우는 다른 얘기다.

 

예를 들어 2014년 제5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R&B 퍼포먼스’의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Hiatus Kaiyote)와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 부문의 맥 와일즈(Mack Wilds)가 그랬다. 당시 이들의 음악은 끝내줬지만, 이름값은 미미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유명한 이름만 빼곡한 것보다 이처럼 의외성이 도드라지는 리스트가 훨씬 짜릿하다. 올해 역시 의외의 인물이 있다. 존 바티스티(Jon Batiste)다.

 

그가 지난 3월에 발표한 ‘WE ARE’가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베스트 R&B 앨범’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무려 11개 부문에 후보로 선정됐다. 물론 바티스티는 베테랑 아티스트다. 특히 재즈와 루츠 뮤직(Roots Music/주: 포크, 블루그래스, 블루스 등등, 지방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음악들을 총칭한다.) 계열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미국 간판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의 밴드 리더이기도 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 Soul)’(2020)과의 연관성도 빼놓을 수 없다. 바티스티는 사운드트랙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럼에도 전혀 예상 밖이었던 건 ‘WE ARE’가 R&B였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른 그를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R&B 리스너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며, ‘WE ARE’ 또한 (음악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차트 성적이 높지도, 매체로부터 크게 회자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특기인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노래를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랩까지 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가 이렇게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다. 오해는 마시라. 평소 존 바티스티를 과소평가했거나 몰랐기에 하는 소리가 아니니까. ‘WE ARE’는 나 역시 올 상반기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앨범 중 한 장이다. 결론적으론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른 덕에 더 많은 이가 ‘WE ARE’를 알게 될 것 같아 즐겁다. 그만큼 지나치지 말고 들어봐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근간은 레트로 소울이다. 레트로 소울 리바이벌은 주로 과거의 소울 음악을 자양분 삼아 오늘날의 사운드로 재해석하거나 철저하게 옛 스타일과 사운드를 구현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WE ARE’에는 이 두 가지 방식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WE ARE’, ‘CRY’, ‘I NEED YOU’처럼 소울, 펑크(Funk), 가스펠,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빈티지한 질감으로 마무리한 곡이 있는가 하면, 재즈와 록을 퓨전한 음악 위로 랩을 얹은 ‘WHATCHUTALKINBOUT’과 남부 힙합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808드럼을 사용하여 트렌드와의 조화를 꾀한 ‘BOY HOOD (Feat. PJ Morton, Trombone Shorty)’처럼 도전적인 곡도 있다. 그의 장기인 피아노 연주가 몰입도를 높이는 인스트루멘탈 트랙 ‘MOVEMENT 11'’도 있다.

 

‘WE ARE’는 우울한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완성되었지만, 바티스티는 블랙 커뮤니티에서의 삶과 현 사회상을 비교적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그린다. 현실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그가 택한 낙관적인 바이브는 훌륭한 음악과 결합하여 나처럼 타 문화권에 사는 이들에게도 적잖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존 바티스티의 음악이 지닌 궁극적인 힘이다.


TRIVIA

 

존 바티스티가 이번 앨범 ‘WE ARE’에서 랩까지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건 성장 환경 덕분이다.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핫 보이즈(Hot Boys), 마스터 피(Master P), 아웃캐스트(OutKast)처럼 쟁쟁한 남부 힙합 스타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또한 학창 시절 점심시간엔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 벌어지곤 했다. 바티스티는 올 4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힙합은 새로운 로큰롤이며, 래퍼는 새로운 록 스타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