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3월, 밴드 킹스 오브 리온(Kings of Leon)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새 앨범을 공개했다.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인 ‘When You See Yourself’를 여느 때처럼 음악 서비스 플랫폼에서 접할 수 있는 버전과 옐로하트(YellowHeart/*주: 2018년에 설립된 블록체인 기반의 경매 플랫폼)란 곳을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한 버전으로 나누어 발매한 것. 여기까지는 베스트바이(Best Buy) 같은 특정 업체에서 독점 보너스 트랙을 수록하여 판매해온 한정판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킹스 오브 리온의 앨범엔 단순히 곡을 추가하는 것에서 나아가 훨씬 복잡하고 획기적인 기술이 접목되었다.
가격 50달러(한화 약 5만 9075원)로 책정된 엘로하트 버전엔 움직이는 앨범 커버처럼 향상된 경험이 가능한 미디어와 음악의 디지털 다운로드 및 한정판 바이닐(Vinyl)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암호화되어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라는 토큰에 담겼다. 해당 버전의 앨범을 얻기 위해선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결제하거나 물리적 매체를 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NFT를 사야 한다(*주: 킹스 오브 리온은 앨범을 NFT 형태로 발매한 첫 번째 밴드다.). 즉, ‘When You See Yourself’가 곧 NFT인 셈이다. 앨범이 토큰이라니, 이게 무슨 괴상한 소리인가?!
아직 많은 이가 NFT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과 비슷한 종류로 인식한다. NFT 역시 가상화폐 시장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을 사용하지만, 개념과 가치는 다르다. NFT는 돈 대신 디지털 자산, 음악을 예로 들자면, 앨범, 곡, 티켓, 뮤직비디오 등의 소유권과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인증서다. NFT는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거래 세부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술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고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투명하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NFT는 거래 가능한 수집품이다. 미래에 가치 보존 및 가치 상승을 통해 재판매로 수익을 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킹스 오브 리온의 앨범은 2주간의 판매 기간이 끝나자 거래할 수 있는 품목으로 전환됐다. 밴드는 이외에도 ‘NFT Yourself’라는 시리즈를 앞세워 라이브 공연 시 평생 앞좌석에서 볼 수 있는 특권과 독점 시청각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특권을 토큰으로 판매했다.
킹스 오브 리온 외에도 NFT를 활용하는 아티스트는 많아졌다. 일례로 힙합 스타 에이셉 라키(A$AP Rocky)는 NFT 거래소인 니프티게이트웨이(Nifty Gateway)를 통해 일곱 개의 예술품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우구(AWGE)의 창작자인 로버트 갈라르도(Robert Gallardo), 월리 사지미(Wally Sajimi), 지미 레귤러(Jimmy Regular)와 함께 만든 해당 컬렉션은 ‘$ANDMAN’이라는 미발표 곡의 일부가 삽입된 1/1 경매, 에이셉 라키와의 녹음 세션 진행, 에이셉 라키의 3D 스캔 두 개, ‘INJURED GENERATION’ 아레나 투어에서 사용한 세 대의 랠리 자동차 3D 렌더링 아트 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전부 수천만 원 이상의 경매가에 낙찰되었다. 더 위켄드(The Weeknd) 역시 NFT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LA에 기반을 둔 디자인팀 스트레인지룹 스튜디오(Strangeloop Studios)와 함께 만든 비주얼 아트워크 다섯 점을 NFT 형태로 공개했다. 그중 ‘광물화된 기억의 조각, 광석에 캡슐화된 수 테라바이트의 독특한 문화적 공예품’을 표방한 더 소스(The Source)는 무려 한화 5억 4000만 원에 낙찰됐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곡의 저작권 지분을 NFT화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NFT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아티스트의 작품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고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최초 음악계에서 NFT는 인지도가 덜한 소수의 아티스트들이 행하는 흥미 있는 시도 정도였다. 온 세상이 가상화폐 이야기로 떠들썩할 때에도 음악과의 연계점은 희미해 보였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가 지속되면서 NFT가 아티스트와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년부터는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NFT 결과물이 쏟아지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옐로하트 같은 회사는 아티스트에게 블록체인에 대하여 교육하고 NFT 생성에 관한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다.
싱글이나 앨범 그리고 아티스트 관련 영상은 여전히 온라인에서 무료, 혹은 적은 비용으로 감상할 수 있음에도 굳이 비싼 돈과 (경매 낙찰을 위한) 시간을 들여가며 팬들이 NFT를 사려는 건 아마도 완전한 소유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쉽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NFT는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하며, 오로지 하나의 원본으로서 존재한다. 단지 그것이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형태일 수도,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뉜 형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소수의 선택된 자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기존의 한정판보다 훨씬 폐쇄적이며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욕구로부터 피어난 음악계의 NFT는 이제 아티스트와 음악이 지닌 가치를 변화시키고 팬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안에 담긴 콘텐츠는 물론, 판매 방식과 이후의 조처까지 모든 부분에서 팬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또한 NFT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는 무한대에 가깝다. 현 시점에서 NFT 열풍이 음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여부는 논하기 어렵다. 몇몇 아티스트가 성공적 결과를 도출해냈고, 큰 단위의 돈이 오가는 시장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당장 NFT 음악 산업이 직면한 문제도 떠오를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의 지적재산권 해결, 신인 아티스트에겐 상대적으로 높은 진입 장벽 등등. 그럼에도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이자 획기적인 수집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 이 신흥 시장은 수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아주 멀기만 하던 NFT 음악은 점점 가까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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